나는 병원에서 일한다. 이 지역 일대에 응급의료센터가 있는 병원은 우리 병원 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상환자나 중증환자들은 모두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거나, 우리 병원을 거쳐 3차 병원으로 전원 된다.
잊히지 않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많다. 물론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수능이 끝나고 막 성적이 발표되던 시기였다. 119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들어왔고 구급대원들이 끌고 들어오는 스트레치 카 위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누워있었다.
이 학생의 인적사항을 알 수 있는 건 교복에 달린 이름표 하나였기에 나는 구급대원이 건네주는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사진이 뜯어져 나간 수험표였다.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 수험표 하나로도 학생의 주민등록번호나 보호자 인적사항을 알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찰에서 신원을 알려 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학생에게 기도삽관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나는 제발 심장이 다시 뛰길 기도했다.
교복 바지 밑에 보이던 하얀 양말, 그리고 새카만 발바닥.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눈앞에는 그 학생의 발바닥이 보인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먼저 도착한 건 학생의 어머니였다. 가망 없는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던 우리는 어머니의 도착과 동시에 사망선고를 내렸고 아니라고 내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하던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도저히 들을 수가 없어 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30분 정도 눈을 식히고 있는데, 그 추운 날 땀으로 범벅된 남자가 내게 다가와 학생 한 명 119타고 오지 않았냐, 어디에 있냐 물었다. 그 환자는 이미 장례식장으로 내려간 뒤였다. 학생의 아버지인 듯 해 나는 차마 장례식장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응급실로 가보세요'라고만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나는 당시 7년 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무뎌지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험하게 들어올 때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다.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떠올라서. 유치원생 여자아이 하나가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들어온 일이 있었다. 그 작은 아이가 어떻게 베란다에서 추락할 수 있었을까. 아이가 잠든 사이 잠깐 자리를 비운 엄마를 찾으러 창 밖을 내다보다 떨어졌다고 했다. 그 작은 몸에 심폐소생술을 하던 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난 그날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 한동안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의문의 심정지로 들어온 아이도 있었다. 겨우 소생해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시켰으나 사망했다. 내가 그 아이의 사망 소식을 알 수 있었던 건, 경찰이 의무기록을 발급하러 내원했기 때문이다. 피의자는 아이의 엄마, 혐의는 아동학대. 얼마 전 국민적으로 공분을 샀던 정인이 사건이 있기 한참 전이다. 마지막으로 진료를 했던 의사의 소견을 듣기 위해 내원한 경찰과 응급실 과장님과 함께 차트를 열어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는 병원에 참 많이도 내원했었다. 흔한 감기, 장염부터 시작해 장난감을 밟아 넘어져 머리를 꿰매고, 뜨거운 것을 먹다 입에 화상을 입고. 아이를 키우면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사고들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그게 다 아동학대의 증거였던 거다. 같이 일하던 후배는 내게, 아이의 엄마가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 중에 어떻게 그 아이의 엄마가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아이의 엄마는 유난히 병원 직원들과 의료진에게 친절했다고 한다. 고생 많다며 음료수를 건네기도 하고 항상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일은 많다. 어지러움증과 구토, 오한 등의 증상으로 119에 실려 들어온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과거 병력을 묻던 나에게 갑자기 나지막이 '선생님. 제가 마약을 했는데요.' 라며 고백해 나를 일시 정지시켰다. 그런 일이 처음이었던 나는 당황해 네? 라며 되물었고 그 남자는 동남아 여행을 갔다가 몰래 숨겨온 대마를 호기심에 피웠다고 진술했다.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지구대를 기다렸다. 경찰이 도착해 그 남자에게 마약을 정말 했냐고 묻자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금 자백하는 건가요.' '네.'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마약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될까 고백했던 것 같다. 곧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도착했고 우리에게 혈액 샘플로 마약검사가 가능하냐 물었다. 그 남자는 마약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고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아마 초범이고 범행을 자백했으니 감형받지 않았을까.
9년 동안 병원에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글로 쓰려면 끝도 없지만, 나는 이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들려드리려 한다. 나의 일상이 남에겐 끔찍한 일이 된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이 글을 통해 해드리고 싶은 말은, 내가 쓰는 글을 읽으며 본인의 인생과 평범한 일상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