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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Feb 03. 2024

65:35 비율로 살기

가끔 몰입하는 게 겁이 납니다

'그날 하루에 집중하며 사는 거지 딱히 계획이라는 게 없어도 하루를 충실히 살다 보면 되는 거야.'

'어느 정도의 단기, 중, 장기 계획은 세우며 살아야 보다 체계적이고 촘촘하게 잘 살 수 있지 않겠어?'

하는 뭔가 대립되는 느낌의 생각들이 늘 나를 오고 간다.


모든 것에 꼭 흑백논리가 있는 것은 아닌데 뭔가 기준을 세워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아무래도 후자 쪽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상대적으로 나를 많이 이해해 주고 내가 부족해도 사랑을 받아줄 가족이라는 존재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조그마한 흠집도 내보이기 싫은 꼭 드라마에서 보던 회사생활과 같았던 긴 시간 근무했던 전 직장.. 을 비교해 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내 부족하 부분에 대한 피해의식이라도 있는 듯 회사와 집에 집중하는 비율이 65:35였다. 아니 그보다 더 격차가 컸을 수도 있겠다.


회사에서 대단한 일을 해내서가 아니라, 내 행동 생각 마음의 비율이 그러했다. 회사가 싫다면서도 생각과 고민의 대부분은 회사였고, 내 아이들과 남편이 아프지 않은 이상 내게 있어 가족 때문에 오는 고통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가족이 노력해 주었고 가족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결과 있을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집에 대해 온전한 관심을 두지 않은 전형적인 불량엄마, 불량아내였을 확률이 훨씬 크다. 돌이켜보나 그러하다.


그때의 나는 회사로 비중을 두면 둘수록 마음이 더 조급해졌고 불안해졌으며 사람들의 시선, 말 한마디에도 그날 하루가 좌우될 만큼 내가 없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업무 자체에 있어 최선을 다했다. 관계는 관계고 일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딘지 2% 부족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라도 해야만 회사에서 나 스스로 할 말이 있고 당당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과했다. 너무 지독했고 너무 희생했다. 모든 것이 지나쳤다.


성실한 건 좋은 자세지만 대가를 바라는 삶은 참 힘겨웠다. 늘 내 마음속에는 '이렇게까지 일하는데 왜 내게..'라는 문장이 따라다녔다. 진심이었고 이 생각이 오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너무도 오래 걸렸다.


여차여차 내가 브런치를 통해 2년 동안 써온 글을 보면 알다시피 이직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한 지 5개월이 넘어간다.

여전히 나는 이곳에서 열심히 일한다. 바빠도 바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바쁘고 야근이 당연한 회사. 하지만 스마트하고 착한 이들이 모여있기에 심적고통이 그리 크진 않다.

그 가운데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 하나.


나는 의식적으로 65:35를 외친다. 65 집 35 회사. 내 하루의 마음 두는 비율이라 할 수 있겠다. 24시간으로 표현하기엔 이미 물리적으로 회사에서의 시간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내 마음까지 회사에 둘 수는 없다는 표현이겠다. 근무가 끝나면 툭 털고 집에서는 가정에만 충실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

딱 35%만큼이어야 억울하지 않다는 마음. 어떠한 사람도 기부하듯 자선사업하듯 회사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지간한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당연히 보상심리가 따른다. 어쩔 수 없다. 그럴 경우 내가 이렇게 까지... 희생..이라는 단어가 나올 만큼 내 진력을 쏟지는 않겠다는 마음. 그래야 억울함도 없고, 훗날 더 멀리 보았을 때는 나에게도 회사에도 이익인 셈이다.


비율이 점점 높아지려 할 때마다 되뇌인다. 회사가 나를 살게 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살게 하고, 내가 가족에게 도움 되는 삶이어야 한다. 회사에 도움 되는 삶은 이미 월급값을 하고 있는 것만 으르도 충분하니까.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라는 어느 작가님의 책처럼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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