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물안궁의 삶 Jul 06. 2024

나도 웃을 때 웃고, 화날 때 화내고 싶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옥죄어 휘감고 있는 걸까?


나는 요즘 나 스스로에 휘말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그 기복이 너무나 큰 편이다. 스스로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할 때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감이 조금은 올라간다.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만, 어떠한 이유로 나 스스로 잘하고 있지 않다는 반성에서 시작해 피해의식까지 생길 만큼 스스로의 자존감을 완벽히 박살 내버리고 나면, 나와 관계가 얽힌 모든 상황들까지 안 좋게 생각하게 된다. 사실 상생하는 구조라고 생각이 드는 만큼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다 휘말리는 것처럼 하루종일 그렇게 몇일, 일주일, 몇 달이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나는 그랬다. 나는 이 회사에 와서 젊은 친구들이 많았고 한 번도 그런 환경에서 일해본적이 없었기에 무뚝뚝하게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했고, 그렇다고 내 성격답지 않게 밝게 지내는 것도 어색하기만 했다. 무엇이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나는 그저 가만히 있기를 택했다. 나와 일이 얽힌 팀장들하고 주로 대화했고 그마저도 일이야기 아니면 안 했으며, 주로 내 업무에만 몰했다. 이직한 지 1년도 채 안되기도 했고, 전임자가 해놓지 않은 여러 업무들을 다시 재작업하고 이것저것 자료들을 정리하는 데에만 해도 시간은 충분히 오래 걸렸다. 즉,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여력도 없었단 이야기다.


하지만 우울하고 다운되는 감정은 노력한다 해도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즉 노력해도 고쳐지기 힘든 것인데, 노력을 안 하면 그 0.001%의 확률도 없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경전을 읽고, 달리기나 운동을 하면서 노력해 나가고 있지만 관계로 받은 상처는 다시 어떠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부딪히며 경험을 쌓고 새로움을 배우고 치유해 나가는 것 외에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수년간 주로 사람관계를 될 수 있으면 피해 가는 방향을 택해오기도 했다.


이제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나 나름 노력을 시도했다. 하지만 연습기간(?)이라는 생각보다는 한두번의 시도 후 찾아오는 반응에서 더 상처받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어린 직원들에게 그런 일을 겪을 경우 나는 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들이 내게 준 상처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주는 그리고 입는 상처였다.


다같이 모인자리에서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내가 무언가를 말하면 정색을 했고, 내가 무언가 정색하며 말하면 그것은 화낼 일에 화내는 것이 아닌 급발진하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면 그건 너의 감정이고 너의 생각인데 왜 주변반응을 의식하냐며 편하게 하란 답을 준다


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정색하거나 무안을 주거나 할 때 위축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나의 감정을 밀고 나가면 정말 독불장군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요즈음의 나는 나에게 완전히 잠식당해 그리고 외부의 영향에 완전히 잠식당해 있는 상태다.

내가나를 구해야 되는데 구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겠다.


그래도 지난주는 퇴근 후 달리기를 하며 집에서 혼자 확대 재생산하는 소설 쓰기 놀음만큼은 막아내었다. 아침마다 경전을 읽으며 집중력을 높여보려 하기도 했고, 물론 그 경전을 읽는 행위가 당장 현실에 무언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다만 그렇게 꾸준히 해보는 게 적어도 나쁠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지난 일주일 나는 무수히 많은 무시와 교묘히 눌러내리는 중압감속에서 그래도 버텨냈다. 내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일주일 내내 그런 감정이 들었다.


나는 서른여덟이 되도록 여전히 방법을 모르겠다.


 사람관계를 무조건 잘해준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자신은 없이 상대만을 위한 배려라는 미명하에 불편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늘 생각해야 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잇값을 생각해야 한다. 어렵다.


어려운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그러진 관계 속에에서도 내가 부서지더라도 그래도 버텨왔다.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 초6부터 중1까지 극심한 왕따를 당해도 지금까지 살아냈고, 폭력을 당해도 견뎠다. 내 물건을 훔쳐가고 책가방을 찢어놓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나는 결코 잘못된 선택은 하지않았다.


이번에도 또 그렇게 그렇게 살아낼 수 있다.

살아야 한다. 어쩐지 내가 나를 휘감아 옥죄이고 있는 이 굴레안에서 먼저 벗어나야 할 건 나 자신이다.

남들이 나를 미워해도 괜찮다. 아니 우습게 봐도 괜찮다.(안괜찮다 사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제일 빨리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나까지 나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연민에 휩싸인 나잇값 못하는 사람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하지만 저 멀리서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은 감정에서 나는 벗어나야 한다. 제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득해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여덟은 맑은 날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