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용호 Jul 19. 2022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영상  에세이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이별을 한다. 미련은 남았는데 서로 헤어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사별은 그 전형이다. 원치 않는데 생멸이 갈라놓는 이별. 이런 이별은 떠나간 이를 오래 그리워하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시간이 흐를수록 애틋하게 가슴에 남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별보다 더 아프다. 그 혹은 그녀가 어디 살고 있는지, 금방이라도 전화번호만 누르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누를 수 없고 받지 못하는 그런 이별 말이다. 살아 있는 이의 이별마저 넉넉하게, 그러나 섭섭하게 혹은 섭섭하지 않게 녹여낸 시가 어울리는 절기다. 바깥은 올해 최고의 폭염 속에 끓고 있지만 그 열탕 속에서도 화려하게 꽃은 핀다. 연꽃이 절정이다.


미당은 이별을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하라고 했다. 그것도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마음을 다스리라고 했다. 더욱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이별을 품으라고 했다. 그 이별의 자세는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취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은 한번 피었다가 스러져도 오래 이별을 견디는 능력을 타고났다. 연꽃 씨앗은 엄청나게 단단해서 망치로 때리거나 불로 지져도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1000년 묵은 씨앗이 발아된 적도 있고 일본에서는 2000년 묵은 씨앗까지 꽃을 피웠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함안 성산산성 출토 현장에서 점토 안에 잠자고 있던 연꽃 씨앗 10개가 발굴됐고, 그중 1개가 싹을 틔웠다. 700여 년 만에 피어난 고려시대 연꽃은 옛 한국 불교화에서 보던 바로 그 모양새였다. 지금 이 절기에 함안에 가면 수백 년 이별을 견딘 ‘아라연꽃’이 만개한 방죽을 만날 수 있다.


언젠가, 그때가 내생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살아서 겪는 이별이 조금은 덜 아플까. 격한 아픔은 상처만 더 깊이 굴착한다. 아프지만 아주 아프지는 않게, 조금만 아픈 듯하게, 그 사람 만나고 온 바람 같이, 그것도 한두 철 전 만나고 온 바람 같이, 서럽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미당의 시에 김주원이 곡을 붙인 동명의 노래도 연꽃 만나고 온 바람같이 서늘하다. 연꽃 바람에 녹록해진 이별이 피아노 선율을 타고 한숨처럼 돌아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그 말은 나의 펜이 우는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