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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호 Jul 31. 2022

"우리는 서로에게 지푸라기 같은 존재들"

[조용호의 문학공간] 손원평 장편소설 ‘튜브’


좌절을 거듭한 중년 남자의 '지푸라기 프로젝트'

지푸라기가 튜브가 되어 떠오르게 하는 응원의 힘

"우린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풍랑 속에 살고 있다"



당신은 어떤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가. 삶에서 어떤 희망을 붙들고 있는가. 없다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흐르고 있다면, 그런 자세도 나쁘지는 않다. 삶과 다투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것도  생을 건너가는 무난한 방법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태도 자체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인간들은 누구나 크든 작든 욕망에 시달린다. 그러다 좌절하고 스스로 생을 끝내기도 한다.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손원평. 그가 새로 펴낸 장편 '튜브'는 거듭 사업에 실패해 죽음으로 내몰린 중장년 남자가 중심 인물이다. [창비 제공]


'아몬드'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올라선 손원평의 신작 장편 '튜브'(창비)는 변화를 원한다면,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기를 원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숱한 좌절 끝에 자신만의 해법을 찾은 인물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소설이다. 이 사람 이름은 김성곤 안드레아, 50대.


청소년소설 공모에 출품한 소설 '아몬드'(2017)는 슬픔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를 내세워 사랑을 말하는 작품. 이 소설은 국내에서만 100만부 넘게 판매됐고 일본 미국 스페인 등 20여 개국으로 번역 수출됐다. 일본에서는 20만부가 판매되며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2020)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 장편의 인물은 청년 세대로 이어졌다. '서른의 반격'이라는 장편은 4·3평화문학상을받으며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세상과 부딪치는 이야기를 품었다. 이어진 장편 '프리즘'에서는 이들 청년 세대의 만남과 이별을 담아냈다. 이번에 출간한 '튜브'는 50대 남자에 포커스를 맞추어 좌절과 희망의 자맥질을 거듭하는 중장년의 이야기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한강으로 걸어들어갔다가  원치 않게 살아난 김성곤 안드레아. 그가 어떻게 다시 생의 밧줄을 붙드는지 과거사와 현재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유년기에 어머니 최용순 글라라의 품에 안겨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았고, 안드레아라는 영세명을 얻었다. 어머니의 극성에 신부를 보좌하는 '복사'까지 맡았지만, 악동의 꾐에 빠져 성물을 절단내는 악행을 저지른 '안드레아'였다. 이 세례명은 대학시절 스페인어 회화를 하면서 만난 차은향 카타리나와 예명으로 쓰는데 유효했다. 그에게 '안드레아'라는 이름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존재감을 선사했고, '성곤'은 다시 현실에 발을 붙이게 하는 이름이었다. 졸업 후 첫 직장 해외영업팀에서 일할 때는 '성곤 안드레아 킴'으로 이름을 새겼다.


란희라는 여성을 만나 무난하게 직장인으로 살아가다가 가슴속에 질척하게 쌓이는 권태의 이유가 '잘나가는 건 내가 아니라 회사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소모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박차고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잡다한 물건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거쳐 커피 전문점, 3D 프린터 사업까지 차례로 망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섰고 실패하면 보란 듯 새로 시작했다. 주기는 점점 짧아졌고, 주저앉아 있는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김성곤에게는 핵심적인 반성이 없었다. 그는 실패에서 얻은 게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기필코,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는 반드시, 같은 말로 스스로를 다잡고 채찍질했을 뿐 지긋이 반성하고 돌아보기에 김성곤은 너무 성급했다.' 김성곤은 아내와 딸과 더이상 함께 살 수 없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점점 가망 없는 인간이 돼갔다.

자동차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죽으려고 했지만 술에서 깨어보니 창문이 열려 있어 죽지 못한 채 견인차에 끌려가고 있었다. 한강에서 나와 서울역 대합실 TV에서 흘러나오는, 돈벌이의 글로벌 스타가 흘리는 '변화'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귀에 꽂혔다. 김성곤은 행복하던 시절 가족사진 속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최소한 그때의 자세라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피자집을 운영하던 시절 사장과 알바생으로 만났던 진석이라는 80년대 팝매니아 청년에게 그는 말한다.


'있잖아, 진석아. 난 그동안 뭘 할 때마다 늘 목표를 생각했거든. 근데 그 목표들이 순수하지가 않았어. A는 B를 위한 행동이고 B는 C를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랬거든? 근데 그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라. 최종 목표가 무너지면 중간에 했던 A부터 Z가 전부 무의미해 지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렇게 거창한 목표 같은 걸 안 세우기로 했어. 행동에 목표를 없애는 거지. 행동 자체가 목표인 거야.'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는 진석의 물음에 김성곤은 "도착해야 할 미래의 이정표를 너무 먼 곳에다 세워 놓으니까, 현재가 전부 미래를 위한 재료가 되더라"면서 "자세 하나 고치는 거, 그 자체가 목표"라고 말한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작은 지푸라기 하나가 긍정적인 미래를 힘겹게 열어주었다. 여기에서 출발한 새로운 사업이 바로 '지푸라기 프로젝트'.  


'제가 제안하는 건, 함께 하자는 겁니다. 어떤 인생이든 그 안엔 절망과 희망이 함께 깃들어 있고 작든 크든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줄 지푸라기를 잡고 싶어하는 건 모두가 똑같아요. 하지만 어떤 지푸라기를 쥘 건지는 스스로 정해야 하죠.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내미는 지푸라기는 잡아봤자 금세 가라앉을 테니까요. 이 프로젝트는 여러분이 스스로 만든 지푸라기에 바람을 넣어줄 겁니다. 지푸라기가 엄청나게 커다란 튜브가 될 때까지, 그래서 여러분이 당당하게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유튜브에서 큰 호응을 얻는다. 연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아버지는 사기 혐의 누명을 쓰고 자살한 김시안이라는 인물은 3년째 방 안에서만 지냈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방 밖으로 나와 거실까지 발걸음을 디디는데 성공하고 급기야 세상 밖으로 나온다. 대학시절 연애감정을 느꼈던 차은향이 좌절한 채 나타나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꾸리기 위한 사소한 시도에 착수한 것도 이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이 아이템을 주시하던 글로벌 투자자가 접근하고, 급기야 큰 투자를 받아 잘 나가는가 싶었지만 성곤은 용도폐기됐고 다시 한강을 찾는다. 죽는 데도 운이 따르지 않은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고 평화를 얻는 데 성공한 어린이 차량 운전기사 박실영이 던지는 말.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


영화와 소설 사이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 온 손원평. 그는 "안주하지 않고 힘을 다하는 영혼들에게 멀리서나마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고 썼다. [창비 제공]


손원평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은 작은 단서에서 출발한다"면서 "김성곤은 이해할 수 없는 삶 앞에 겸허히 머리를 숙이고 삶에 대적하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대신에, 삶과 동등한 입장에서 악수를 나누기로 했다"고 썼다. 작가가 원하는 삶의 태도로 빚어진, 길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범부들의 궁극적인 이상형은 이러하다.


'사실 언젠가 남자는 당신과 부딪힌 적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사실 역시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등이 곧았음은, 그의 눈이 맑게 빛나고 있었음은, 그 숱한 일들을 겪고 때로 바닥을 보인 후에도 어느새 그의 얼굴 위로 모든 것을 안아내는 지혜로운 영혼이 새겨지고 있었음은, 그러니까 그가 이 이야기의 처음과는 꽤 다른 얼굴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손원평은 영화 감독으로도 활약해 2020년 장편 영화 '침입자'를 개봉했다. 영화와 문학 사이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침잠되고 고통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를 견디게 한 건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위안과 위로의 말들이었다"면서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곧 그런 말들은 공허하게 휘발됐고, 나를 다시 일어서 걷게 한 건 언제나 다시 해보라거나 응원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혹은 내 내면의 담담한 어조였다"고 밝혔다. 응원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지푸라기 같은 존재들인 셈이다. 이어지는 작가의 말.


'물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뒤에도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영원토록 따뜻한 바닷물 위에 아무런 노력도 없이 둥둥 떠 있는 속 편한 삶이란 없으며, 혹여 그 비슷한 것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장담컨대 그 삶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권태와 무기력일 것이다. 우린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풍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비바람을 만나야 하고 그러면 또 헤쳐 나와야 한다. 자신만의 기술과 혜안을 가지고.'



*이 글은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20727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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