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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차라리 죽여주세요

암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다

by 엄마쌤강민주 Mar 12. 2025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다루고 있다. 가족 간의 복잡한 감정의 충돌과 갈등, 그로 인한 상처에 대한 글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세상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스스로를 밝히면 그 빛을 보고 어둠 속에서 나오소서.”    

  


시어머니는 연애 시절부터 농담처럼 말했다.

“결혼 전에 임신하면 무조건 아들이라더라.”

그런 말은 반복되었고, 그 무심한 농담은 점차 나를 재촉하는 압박으로 변해갔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 아이 소식이 없자, 시댁은 내가 돈 욕심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고 일하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일하면서 연이어 겪은 두 번의 유산과 그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나를 괴롭혔다. 나는 부동산을 그만두고 싶었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던진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돈복이 많아. 그러나 돈을 좇으면 아이가 안 생겨.”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쉬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

그런데 남편이 너무나도 이해되지 않는 말을 했다.

“아기는 밖에서 낳아 올 테니, 너는 계속 돈을 벌어.”

남편의 입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박히며 이해된 순간, 분노가 솟구쳤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부동산 사무실을 내놓고 이혼하려고 마음먹었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혼 사연을 읽으면 그들의 고통이 내 것처럼 다가왔다. 매일 기막히고 억울한 사연들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며 보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어머니가 나를 보러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던 어머니는, 일을 쉬고 인천까지 올 수 없다며 오히려 “아픈 놈이 죄인이지”라고 말씀하셨다. 죽을 뻔했던 그 상황을 어머니에게 설명하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많이 서운했다.

“엄마, 내 뱃속에 피가 가득했어. 과다출혈로 쇼크사할 뻔했어! 내 얼굴을 영원히 못 볼 수 있었단 말이야!”

나의 분노에 찬 외침에 어머니는 무심하게 “아픈 놈이 죄인이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암 소식을 들은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다. 남편은 어머니를 인천으로 모시고 왔고 암으로 유명하다는 병원을 수소문했다. 대전에는 대학병원이 많고,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이 많이 산다.

‘그런 곳을 두고 굳이 왜 인천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오는 걸까?’

남편의 행동은 혼란스러웠고, 분노를 일으켰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이혼은 미뤄졌다.   

  

2008년, 어머니는 대림성모병원에서 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치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같은 병동에서 얼굴을 익히고 인사했던 이가 다음 항암치료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머니는 면역 수치가 제로로 떨어질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고, 의사에게 “차라리 죽여주세요”라고 울부짖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병든 어머니를 지극히 돌보는 착한 딸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여 장모까지 극진히 챙기는 좋은 사위였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다.

“남편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장모님 병간호 이렇게 잘하는 사람 없어요. 남편에게 잘해요.”     


그 시기를 내 인생의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갈등이 끊임없이 일었다.

“어머니는 내가 아플 때 나를 보러 오지도 않았는데, 왜 나는 혼자 어머니를 간병해야 하는 걸까? 간병은 내가 다 하는데 왜 칭찬은 남편이 다 받는 걸까?”

고통은 점점 원망과 울분으로 쌓여갔다. 나는 어머니처럼 외치고 싶었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그 후, 남편이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무속인을 찾았다. 어느 날 무속인에게서 “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라는 말을 들었고, 마음에 걸렸는데, 장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나와 어머니를 용인까지 데리고 가서 그 무속인을 만나게 했다. 그리고 나 몰래 300만 원을 드려 굿을 했다고 했다.

“너랑 이혼 안 하고, 장모님을 살리려면 굿을 하라고 하더라고. 장모님도 대전에서 치료하면 죽을 수 있다고 해서 서울에서 치료받게 하려고 모시고 온 거야”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잡아서 한 큰 굿이었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사위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했지만, 나는 매우 화가 났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스님이신 큰 이모에게 돈을 보내거나 무속인에게 자신의 생사여부를 묻곤 했다. 매번 그럴 필요 있냐고 한 번씩 말렸는데,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내 탓을 했다. 그런데 남편까지 굿하느라 300만 원을 무속인에게...     

300만 원으로 굿을 하지 말고, 그 돈을 나에게 주지. 그럼 엄마 병간호하면서 좀 더 편안하게 병원 생활 했겠지! 제발 나에게 상의 좀 하라고!”


당시 나는 어머니도 남편도 지긋지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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