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구부린 반지
내 경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내가 무속에 빠지지 않고, 정법을 만나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선대에 깨우친 조상이 있어서 그분들이 나를 돕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번 글은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할 무렵 돌아가셨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8년, 친정어머니가 암에 걸린 걸 알자 남편이 “용한 무속인이 있다”라고 말하며 만나러 가자고 했다. 당시 인천에 살고 있었는데, 억지로 용인까지 끌려갔던 나는 그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한쪽 구석에 앉아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무속인이 가슴을 움켜잡으며 괴로워하더니, 힘겹게 말을 했다.
“얘야, 힘들지? 너 힘든 거 알아.”
무속인의 입을 통해, 내 외할머니라고 밝힌 존재가 어머니와 남편이 아닌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누구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는데, 처음 만나는 무속인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견고했던 방어벽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 존재는 말을 이었다.
“네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리려고, 너희들 반지를 구부려가며 신호를 주었어. 네 엄마가 아플 때 간호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너의 탯줄을 잠시 잡아두었단다. 네 엄마가 나으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아이 걱정은 말고 엄마를 잘 돌봐주렴.”
당시 어머니와 나 그리고 여동생이 모두 겪은 일이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손가락에 끼고 있던 14k나 18k 금반지가 이상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다른 반지로 바꿔 끼어도 상황은 반복되었고, 결국 반지를 아예 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의사들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함에도, 나는 이유 없이 계속해서 아이를 유산하였다.
그 무속인은 이런 말도 했다.
“내 신을 몰아내고 다른 신이 내 몸에 들어와 말을 한 건 처음이에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기억하기로 살아생전의 외할머니는 항상 불경을 틀어놓고 계셨고 어린 시절 외가댁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이 외할머니를 찾아왔는데 외할머니는 찾아온 이들 모두에게 똑같은 검은 환약을 건넸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병명은 모두 달랐는데 똑같은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경험은 ‘외할머니는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그래서 돌아가신 후에도 늘 우리 가족을 지키시는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외할머니란 백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언제가 스님이 말씀하시길, 외할머니는 돌아가셔도 자식들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고 했다. 교회 다니는 이모를 따라서는 교회 가서 성경 공부를 하고, 스님이신 큰 이모 따라서는 불교대학에서 불법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죽어서도 공부는 끝이 없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 4년제 대학을 마쳤음에도 다시 대학에 편입했고,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된 것이다. 공부하면 할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아있는 이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외할머니가 자손들 일에 관여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부터 열심히 배우고, 스스로 잘 살아가면, 외할머니가 더 이상 나에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결심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내일은 내가 스스로 하자고.
그 결심은, 지치고 힘들어도 나에게 여전히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고 일깨운다. 또한 죽어서도 내 인연들은 내가 구해야 하는 것이라면, 살아생전 조금씩 미리 구해서 죽은 후의 일을 덜자고 생각했다. 내 경험을 글로 남겨 인연들에게 전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2019년, 내 반지들이 다시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며 걱정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어머니가 다시 암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