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자기 결정권
한때,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 존재를 간절히 원했다. 내 마음속 갈망이었지만, 그 갈망을 향한 여정은 단순히 나만의 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끝없는 외부의 압박과 조언들이 나를 얽어매는,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결혼 후, 우리의 신혼은 마치 꿈처럼 달콤했다. 모두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남편이 부인 이뻐서 어쩔 줄 모르네.”
그러나 유산이 반복되면서, 남편의 달콤함은 점차 사라졌다.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자연유산은 흔하지만, 세 번 이상 반복되면 ‘습관성 유산’이라 합니다.”
그의 말은 차갑고 냉정하게 들렸다.
“남편과 부인의 얼굴이 많이 닮았네요. 부부 사이에 서로 면역학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유산되는 걸 수 있어요.”
그러나 특별한 해결책 없이 “그냥 기다려보세요.”라는 말만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친한 부동산 실장은 신생아용 아기 신발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다. 친구는 신생아용 옷을 선물해 주었다. 그들은 내가 신생아 용품을 지니고 있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런 선물은 기운을 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압박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의 조언은 끝이 없었다. 누군가는 “아들을 낳기에 좋은 체위가 있다.”라고 말했다. “교회에 다니면 아이를 낳을 수 있어” 라거나 “용한 점집 있는데, 가볼래?”라는 말이 쉼 없이 들려왔다.
내가 몇 번의 유산을 겪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 난데없이 자신의 신어머니라는 분을 소개하는 일도 있었다. 그 무속인이 말했다.
“300만 원만 가져와. 아이 낳게 해 줄 테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호의로 건네는 소소한 말들조차 점차 짐이 되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손자를 간절히 원하며, 전국의 유명한 한의원을 수소문했다. 한의원에 가면 왠지 시어머니에게 죄스럽고 주눅이 들어서, 내 약과 함께 시부모님의 보약까지 지었다. 하필 한약을 먹는 순간, 임신한 줄도 몰랐던 아이가 유산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의원에 데려간 시어머니를 원망하며, 그녀의 기원이 담긴 한약들을 하수도에 흘려보냈다.
심지어 한 번은 점집에 데려갔다. 점집 보살이 말했다.
“막내가 먼저 아이를 가졌네.”
나는 전혀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나보다 결혼이 몇 년 늦었던 막내 서방님 부부가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런 위로를 건넸다.
“아들을 먼저 낳으면 네가 이기는 거야.”
어머님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가 하자는 대로 치성을 드리는 것에 동의했다. 점집 보살은 내가 물과 연이 깊다며, 넓은 개울가로 데려갔고, 여기서 삼신할머니께 치성을 드렸다. 그녀는 ‘시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부부에게 아이를 주신다고 했다’며, ‘치성이 잘 되었다’고 덧붙였다.
치성 후,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삼신할머니로 모셔져 있다는 상자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이상하게 그 후, 잠자리만 하면 남편과 다투었다. 이 상자는, 오랜 시간 동안 꺼림칙한 애물단지였다.
친정이라고 마음 편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으려면 스님이신 큰 이모에게 불공을 지내야 한다고 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친척이 운영하는 절에서 불공을 지내자고 하는 작은어머니. 작은어머니는 온갖 민간요법들을 권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을 하는 이들이 갈수록 큰 부담이 되어갔다. 나는 생각했다.
‘누구를 위해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걸까?’
아이를 가지려는 내 선택이, 과연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서 비롯된 것인지, 깊은 고민이 들었다. 결국 아이를 가질지 말지, 어떤 방식으로 가질지는 나만의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들던 순간, 주변의 조언과 압박에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그럼 돈도 대신 내줄 건가요?”
이 질문은 단순한 반문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요구와 기대가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를 말하고, 더 이상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의 삶, 나의 미래는 오직 내가 주체가 되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로소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