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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꼭 엄마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졌다

by 엄마쌤강민주

여성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상처 중 하나는 아이를 잃는 것이 아닐까? 특히 2000년 대 초,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거나 자식을 잃은 여성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이다. 이 글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들과의 인연을 기리기 위한 나의 개인적 고백이다.


2007년, 아직 서른이 되기 전, 부동산 일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일이다. 예전 부동산 사무실에서 실장으로 일하던 때, 예기치 못한 유산을 경험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건강한 아이를 품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 산부인과를 찾으며 임신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6개월 만에 기적처럼 임신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의사의 태도는 심상치 않았다. 아무런 축하도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뽑고 초음파를 찍는 일이 반복됐다. 병원에 가면 “내일도 식사하지 말고 오라”는 말만 들었고, 점점 불안감이 깊어졌다. 결국,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자, 친구가 한마디 했다.

“그 병원, 이상해. 다른 병원에 가 봐.”


다른 병원을 찾았다. 새로운 병원의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말했다.

“지금 당장 개복수술을 해야 합니다. 자궁 외 임신입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내게,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말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다시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가 물었다.

“자궁 외 임신이 맞나요?”

그러자 의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여기에 아기집이 보이잖아요. 하지만 아기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아서 수술이 필요합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자궁 외 임신이라며 당장 수술하라네요.”

“자궁 외 임신이면 약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음파에서 아기집이 보이니까 자궁 외 임신은 아닙니다. 소파수술이 필요합니다. 당장 해야 합니다.”


나는 그동안 태아와 교감을 느껴왔다. 예전 유산에서도, 작은 아이가 꿈에 나타나 나에게 말했다.

“제가 엄마를 잘못 찾아왔어요. 여기가 아니네요.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동안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내 아이는 꿈속에서 나에게 자신이 잘 자라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의사는 그런 교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결국 나는 소파수술을 받았다.


그날 저녁, 밥을 먹다 극심한 통증에 수저를 떨어뜨렸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맥이 빨라지면서 식은땀이 났다. 호흡도 곤란해졌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남편이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다른 여자들은 쉽게 아이를 낳던데.”


그 순간, 육체적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 크게 내 가슴을 짓눌렀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너무 커서, 아프다고 말할 힘조차 빼앗겨 버렸다. 그 밤, 나는 홀로 눈물 속에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고통을 참고 손님과 함께 부동산을 보러 갔다.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태아 조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병원으로 오세요.”


병원에 도착한 나는, 의사에게 자궁 외 임신으로 인해 왼쪽 나팔관이 터졌다는 말을 들었다. 과다출혈로 쇼크사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로 배속에 피가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급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수술을 마쳤다.


그날 밤,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한 아이가 내게 말했다.

“저는 꼭 엄마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그 아이의 말이 마음 깊숙이 박혔다. 죽은 태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 아이와 나의 인연에 대해 들었다. 그 아이는 내가 좋아서 내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이 터졌을 때, 내가 죽지 않도록 지켜준 것이라고.


이 경험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넘어, 부모와 아이가 어떤 인연으로 만나는가에 대한 깊은 사유로 나를 이끌었다. 흔히들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만, 내 경험은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선택하고, 그들의 아이로 태어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나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울지 않는다. 내 아이가 다음 생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여 나를 엄마로 택하기를 바라며,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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