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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하 Jan 12. 2023

마음속의 국정감사 - 1

‘나에게 모럴이 필요하다!’라고 뜬금없이 외쳤다. ​


당연히 이것은 마음속 외침이라 주변에서 내 얼굴을 관찰하고 있었다면 내 손에 들린 책과, 종이를 향해 있는 내 시선을 미루어보아 분명 책을 읽는 도중 흥미로운 문장을 읽고 약간 눈썹을 찡그리며 상기된 것이라고 추측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 결심 때문에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대개의 결심처럼 이 외침 또한 정말로 결심대로 행하고자 함이 아닌, 그저 호수변의 새벽안개처럼 뿌옇게 존재하던 불안함을 부르르 떨쳐내기 위해 의도 없이 튀어나온 외침일 것이다. 추위를 떨쳐내기 위해 추위에 길들여진 몸이 아래부터 위로 부르르 떨리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그 외침은 불안함에 대한 반대급부처럼 튀어나온 것이어서 그 내용은 실제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것보다 과장되어서 나왔으리라.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모럴’이라는 크고 모호한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다소 과격하게 표현된 마음속 떨림이었을지라도, 눈이 부시게 맑은 성탄절 날 대낮에 책을 읽다가 저렇게 외쳤어야만 했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요즘 어렴풋이라도 일종의 ‘정리됨’을 바라왔던 것은 저 뜬금없는 외침으로 아주 확실해졌으니까.​


마음의 저체온증은 무엇 때문에 발생했고, 체온을 올리고자 참을 수 없이 부르르 떨어야 했던 이유가 뭘까. 발생했던 일들과 감정을 우연히도 크리스마스에 되짚어본다. ​


이 작업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조작되고 왜곡된 기억을 되짚어서 그 순간 자극된 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니까. 지지부진하고 주제 의식 없는 국정감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


그래서 나는 오늘 주변에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하며 마음속의 국정감사를 선포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나에게 엄격한, 속 아픈 일을 또 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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