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스타툰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_2
4. 한국의 마스다 미리를 꿈꾸다.
그림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어요.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분야는 타고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나도 그림을 잘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일본 유학 시절이었어요. 일본은 뭔가 그림 DNA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위에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유화, 초상화, 데생 같은 대단한 미술작품만 그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귀여운 드로잉도 그림이구나하며, 그림에 대한 개념이 확장되면서 나도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품을 읽게 돼요.
일러스트, 만화도 그림을 굉장히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마스다 미리 작가의 그림체를 보고 저의 고정관념이 깨졌습니다.
(물론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고, 개성 넘치는 그림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일러스트 에세이부터, 창작만화,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합니다. 저는 일본어가 가능하니, 원서로 읽는데 정말 대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맛깔스러워서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도 이러 글을 쓰고 싶어,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국의 마스다 미리를 꿈꾸며, 본격적인 그림 배우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음, 솔직히 말하면 일종의 도피처가 필요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한국 취업의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오랜 취업준비 끝에 일본계 기업의 호텔리어로 첫 직장을 구했는데, 역시나 서비스직이 맞지 않아 반년만에 퇴사를 하게 되면서 마음이 급해졌어요. 졸업 후 공백이 길어지는 것도 무섭고 첫 직장을 금방 그만둔 이력도 얼른 지우고 싶어, 일본계 기업의 계약직으로 급하게 두 번째 직장을 구했습니다.
이번에는 사무직이니까 괜찮겠지 싶었는데, 그냥 회사라는 것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출퇴근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마스다 미리를 꿈꾸게 되죠.
그때가 2016년 초였습니다. 홍대에 첫 웹툰 학원이 생긴 시기였어요. 처음으로 내가 번 돈으로 학원을 등록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6시에 회사를 마치고 저녁도 못 먹고 7시까지 홍대의 웹툰 학원에 가서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집에 오는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열심히 도피처를 찾아 도망쳤어요. 당시는 애플 펜슬이 출시되기 전이라, 디지털 드로잉은 태블릿으로만 가능했어요. 집에서도 그림연습을 하기 위해 역시 내돈내산으로 거금 100만원짜리 신티크 태블릿도 구매했어요.
그런데 웹툰 학원은 제가 생각했던 수업과는 좀 달랐습니다. 저는 마스다 미리, 낢이사는 이야기 같은 귀여운 일상 드로잉을 배우고 싶었는데, 학원에서는 인체구조, 투시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제대로 시작했어요. 사실 학원에서 기본의 기본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당시 저는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빨리 귀여운 그림을 그려서 한국의 마스다 미리가 되어야 하는데 인체 비율 나눠서 몸 그리고 있는 게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토샵이 너무 어려웠어요.
만약 그 시절에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 프로 크리에이트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일상 드로잉을 위한 강의가 많았다면 저는 아마 그렇게 금방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2016년에는 없었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회사일도 적응되면서 자연스럽게 도피처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자 마스다 미리가 되리라는 꿈은 접어두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