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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연세대를 졸업하고 의성으로 일하러 왔습니다

서울 밖이라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 소개

파도(권예원)


1998년생, 스물일곱 여성. '나의 메세지를 가지고 파도처럼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담아 파도라는 닉네임을 지었다.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하고, 2020년 9월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에 인턴으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2021년 7월부터 의성에서 일을 시작해 의성에서 산 지 4년차가 되었으며, 2022년에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되어 의성 청년마을 '나만의성'의 대표로 활동하며 의성 현장을 총괄하는 PM 역할을 3년째 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안전하게 서울 밖에서의 삶을 모색하고 '나만의 삶'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20대를 위한 로컬 경험 프로그램 '로컬 임팩트 캠퍼스', '로컬러닝랩'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20대 당사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창업가나 예술가, 농부, 프리랜서가 아닌, 한 회사에 소속된 PM으로 느끼고 고민한 로컬에서의 일과 삶에 대해 써내려가보려고 한다. (격주 화요일마다 발행 예정)




서울을 사랑하던 스물셋, 로컬행을 선택하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그 해, 대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학교의 비대면 전환으로 인해 아주 오랜만에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처음으로 수업 외에 다른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내려가자마자 한참을 이유 없이 끙끙 앓았는데,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안타까운 얼굴로 '서울에서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건넸다. 그 말을 계기로 서울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답답하던 광주였는데, 오랜만에 누리는 집과 가족의 품, 서울보다 한층 조용한 나의 옛 동네... 하나하나 곱씹다 보니 '아, 나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주변 사람들은 다 취업준비나 고시공부에 돌입한 시기였다. 취준을 하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었던 나는 인생 처음으로 내 삶의 방향성에 자신이 없어진 나를 마주했다.


어릴 적부터 늘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좇아 달려왔던 나였다. 열 살 때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세뱃돈을 모아 재봉틀을 사서 독학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보던 것을 시작으로, 중고등학생 때도 영상제작동아리를 하거나 뮤지컬을 연출/제작해 축제에 올리는 등,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최선을 다해 했다. 그 성격 그대로 대학에 진학했으니, 당연하게도 취업준비를 위한 스펙을 쌓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직장에 들어갈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the dots'를 마음에 새겨 놓았기에, 내가 최선을 다해 하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 연결되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렇게 달리다 4학년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친구들이 취준을 위해 도서관에 있었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랐다. 나도 취준을 해야하나 싶어 이력서를 다운받았는데, 쓸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평생을 가치 있다 생각했던 나의 삶이 종이 한 장 앞에 가치없는 삶으로 전락했다.


'나답게 살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라는 고민을 가지고 끙끙대던 어느 날, 우연히 목포 괜찮아마을 홍동우 대표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됐다. "아, 이런 삶도 있구나!" 여러 고민에 대한 답이 하나로 꿰어지는 기분이었다. 여담이지만, 그 기사가 올라온 일자가 내 생일이었다. 운명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 가까운 목포여서 더 와닿았던 지도 모르겠다. '광주에서 19년을 살았는데 내가 전남조차 잘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길로 목포 여행을 떠나 괜찮아마을의 공간을 탐방해보기도 하고, 강진, 영광, 신안 등 전남 지역들을 여행해보기도 했다. 작은 지역들이 가진 고유한 색채들이 흥미로웠다. 그 뒤로 차츰차츰 로컬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궁금한 분들께 연락을 드려 직접 만나뵙고 이야기 나누기도 하면서.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로컬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은 다 '나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자 막연히 '나도 로컬에 가면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생겼다. 대학교 막학기를 남겨두고 나도 인턴 경험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즈음, 마침 새로 알게된 플랫폼인 '임팩트커리어'에서 공동 채용을 진행중이었고, 마침 그곳에 로컬에서의 미션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멘토리'의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었다. 여기가 내 자리다 싶어 지원했다가, 면접에서 "휴학하지 말고, 그냥 졸업하고 계속 같이 일하자"는 대표님의 제안에 "아, 넵" 하고 휴학을 취소하고, 학기를 병행하며 2020년 9월부터 멘토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남들이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어보는 말도 안되는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의성에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일을 통한 자아실현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내 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것'인데, 나에게 있어 최상의 행복은 '자아실현을 통해 얻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내가 겪어온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교육과정은 청소년, 청년들에게 자아 실현은 커녕 자아 탐색을 할 기회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저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을 향해 달려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앞으로는 달라진 세상이 온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유튜브나 책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사람들이 분명 나오고 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열광하는데, 정작 나는 그런 삶을 어떻게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에서 생기는 박탈감내가 배운 것들로는 달라진 세상에 적응할 없을 같은데, 미래에는 이러이러한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시대, 그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계속해서 물질적인 가치만을 좇아가는 과열경쟁사회에서 느끼는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감. 나는 나와 내 또래들의 고민에서 이런 감정들을 느꼈다.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으니, 지금 내가 가장 마음이 가고, 손에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기로 했다. 그래서 '네가 대표 해라' 라는 대표님의 말씀에 크게 망설이지 않고 의성 청년마을의 대표로 나서게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2편 '청년마을 선정기'에서 마저 해보도록 하겠다.) 대학생들에게 의성에서의 현장 경험을 제공하여 서울 밖에서의 가능성,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회사의 목표가 나의 미션과 결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당장에 내가 매일 보고 듣는 것은 내 또래 친구들의 삶과 고민이었고, 나 역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진로 고민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시기를 겪은 사람이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그 때 그 마음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동기였다. 그렇게 나는 스물다섯, 입사 후 1년 반만에 행정안전부 청사에서 PT를 하고 사업에 선정되어 청년마을 중 최연소 대표가 되었다. 발표를 마치고 남겼던 글을 보니 그 때 내가 이런 말을 했더라. '제 꿈은 저와 함께하는 모두가 꿈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그 꿈을 꽤나 이루어온 것 같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이 의성에서 짧게는 두 달, 길게는 1년 이상 살아가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던 사람들은 분명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또래 청년들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미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함 없는, 어쩌면 더 각박해져가는 사회 분위기를 볼 때마다 자주 분노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의 미션은 그대로다. '각자가 나답게 살 수 있는 사회'.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나의 손과 목소리가 닿는 범위에서는 분명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쌓이면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걸 지난 3년의 경험을 통해 체감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계속 이 일을 한다.




빠르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곳, 로컬


조금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일찍 내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은 짧은 경험으로 섣불리 단정지어 말하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며 시간이 주는 성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있지만, 1년차에는 그 '최연소 청년마을 대표'라는 타이틀이 나의 모든 동력을 만들어줬었다. 모든 부담과 역경을 다 이겨낼 수 있는 도파민 그 자체였다. 


3년차인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 요즘도 종종 강연 요청을 받으면 로컬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체적인 경험을 다양하게 해볼 수 있는 게 큰 메리트'라고.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경험해보는 방법밖에 없는데, 여기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연차나 나이에 비해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의 종류가 굉장히 넓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례가 없거나 이미 존재하는 선택지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경험을 다 주체적으로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좀 더 빠르게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만큼, 연차 대비 시야의 성장이 빠르다. 단, 알려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해쳐나가다 보니 좁은 분야의 전문성, 실무능력은 좀 더디게 성장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대표를 맡다 보니 청년마을 대표자 회의 자리에 많이 참석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 수년 이상 고민하고 책임져오신 대표님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고, 그 경험은 나의 시야를 크게 넓혀줬다. 또, 조직 내에서는 의성에 초기 정착할 때 의성 지사장 역할을 했기에 공무원분들과의 소통, 지역 주민분들과의 소통을 많이 했었고, 작년에는 조직의 규모가 조금 커지면서 팀장 역할을 맡아 조직문화, 시스템에 대한 고민,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했다. 또,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PM으로써 프로그램을 계속 디벨롭하고, 워크숍을 진행하고, 참가자들을 관리하는 일도 했다. 심지어 의성에는 청년 커뮤니티가 거의 없어서 나의 여가생활을 위해, 그리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까지 했다. 사실 나열하면 끝도 없을 만큼 많은 역할을 맡고 다양한 일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떨 때 에너지가 생기는지를 알 수 있었고,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최대한 넣어서 일을 만들려고 한다.


몇달 전 군산의 영화타운에 놀러갔을 때, (주)지방의 조권능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각 지역마다 가진 자원이나 매력이 다 다른데, 그 지역에서 그걸로 1등이 되면 전국에서 1등이 되는 거잖아요.' 크게 공감했다. 로컬의 매력 중 큰 부분이 바로 이 '1등', 또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뤄보고 싶은데, 우선 나의 경우 어린 나이에 소멸위험 1위 도시인 의성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비슷한 일을 도시에서 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주목을 받아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방송도 나오고, 강연도 했다.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는 야망이 있던 나에게는 사실 매우 짜릿한 경험이었다. 물론 양면성이 있지만, 나만의 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나의 것으로 빠르게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라 생각한다. 




의성살이 4년차, 나에게 로컬이란


처음 2년까지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년차가 되는 지금은, 솔직히 진짜 모르겠다. 로컬은 뭐지? 과연 이 방대한 것이 한두개의 문장으로 정의될 수가 있는 건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고, 어떤 영향을 만들어왔지?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답이 없는 고민의 연속이다. 


그래도 글을 쓰다 보면 무언가 정리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4년의 시간들을 적어나가보려 한다. 우왕좌왕하기도, 열정에 불타기도, 번아웃이 오기도, 또 새로운 동력을 얻기도, 좌절하기도 하며 어떻게 지금까지 달려오고 버텨온 나의 나날들. 여전히 할 일은 많고, 새로운 과제를 또 넘어가야 하지만, 뒤돌아보면 분명 무언가 남아있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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