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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컬에 관심 있는 대학생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로컬러닝랩 커리큘럼 개발 과정

로컬에 관심 있는 대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의성에서 로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총 세 번의 피벗을 거쳤다. 해년마다 프로그램 내용을 바꿨다는 이야기다. 참가자들이 원하는 게 뭐지?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뭐지? 어떻게 하면 이들이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지? 등등, 고민을 끝없이 거듭하며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 문제, 지역소멸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이라는 방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통해 그 동안 우리가 해보고, 고민하고, 바꾸고, 다시 해보며 디벨롭한 프로그램 개발 과정을 공유하려고 한다. 우리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전국의 파트너들을 구하는 염원을 담아서-!




1년차 : 로컬 임팩트 캠퍼스 1, 2기


현장관찰과 문제정의의 중요성


로컬 임팩트 캠퍼스(이하 로임캠)는 '문제정의'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었다. 모집부터 지역의 '진짜'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해결하자는 취지였고, 프로그램도 6주 중 2주라는 긴 시간 동안 현장 관찰만 다니면서 각 팀이 발견한 지역의 숨겨진 문제들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로컬임팩트캠퍼스 1기 모집을 위한 홍보 카드뉴스 중 일부


로임캠의 커리큘럼은 카카오100up의 문제정의 툴킷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이 때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것은 '진짜 문제는 현장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첫주에는 팀별로 랜덤 주제를 정해 관찰을 다니도록 했다. 아침/점심/저녁/관광지/농장/학교/청소년/노인/청년 등, 다양한 키워드를 사전에 적어두고 랜덤으로 뽑아서 3일 동안 팀별로 현장 관찰을 진행했고, 매일 저녁 관찰한 내용을 전체가 모여 공유했다. 그 후 관찰한 내용을 기반으로 우리 팀의 주제를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인상적이었던 점은, 우리 팀이 뽑은 키워드는 다른 팀이 관찰하지 못했으니까, 우리 팀이 제대로 관찰하고 들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다들 강했다는 거다. 혹시라도 우리 팀이 관찰한 내용 중에 다른 팀이 인상깊게 느낀 내용이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그 기회를 없애면 안된다는 책임감이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모인 참가자들이라 그런지, 이런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서 매번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러너들이 열심히 작성한 관찰기록지. 이 기록지만 봐도 그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2주차에는 주제 선정 워크숍, MYSC의 문제정의 워크숍이 진행됐다.

1주차에 관찰한 내용들 중 우리 팀이 가장 인상깊게 느낀 세 가지 소재를 선정하고, 툴킷 작성과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 그 중 하나를 선정하는 주제 선정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후, MYSC에서 진행해주신 워크샵을 통해 선정한 주제와 관련된 문제 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3~4주차는 끊임없는 현장 리서치와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더욱 깊이, 깊이, 더 깊이 정의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매일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고민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제공한 것은 각종 툴킷의 활용법에 대한 강의와 밀착 피드백. 이 때는 돈이 없던 대신 회계 등의 행정 업무를 할 게 없었기에, 운영진들도 프로그램 운영 준비 외의 모든 시간에 늘 참가자들과 함께 고민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며 속상해하던 나에게, 너는 가장 귀한 너의 시간을 주고 있지 않냐는 동료 닿의 이야기가 아직도 깊이 남는다. 


4주차에는 중간 공유회 겸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지금까지 정의한 문제 내용을 공유하고, 군청의 관련 부서 공무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이런 활동이 처음 진행되었던 만큼 군에서도 반응이 다양했다. 공무원들의 미지근한 반응에 속상해하는 팀도 있었고, 꽤 유용한 답변을 얻어 좋아하던 팀도 있었다. 러너들이 열심히 달리던 열정은 의성 주민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기반이었는데, 공무원으로부터 '지금 그 문제에 쓸 예산이 없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사기가 꺾일 법도 하지 않은가. 우리의 역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사실 로임캠 때는 우리도 의성에 처음 온 사람들인 건 마찬가지였기에, 지역에 대한 파악도 어려웠고, 공무원들에게 우리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도 시간이 짧았다. 그래도 이 때의 노력이 쌓여 지금은 의성군의 여러 부서와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간은 역시 가장 큰 자원이다.



이후 5~6주차에는 솔루션을 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각 팀별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여러 방면으로 발산해보고, MVP를 만들어 테스트도 진행해봤다. 


다이소에서 산 블루투스 LED 조명과 셀로판지를 활용해 MVP를 만들어서 버스 기사님과 운수회사에 직접 양해를 구하고 버스에 하차벨을 달아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본 팀도 있었고, 의료용 스쿠터를 판매하시는 사장님과 함께 고객분께 안전교육을 진행해본 팀도 있었다. 의성읍에 유일한 보청기 가게 사장님과 협업하여 일일 보청기 수리소를 열어 보청기 관리법 교육과 간단한 고장을 수리해드리는 행사를 연 팀, '청년들이 쓰는 어르신 이력서', '시니어 MBTI' 등을 개발하여 '시니어 일자리 상담소'를 열어 어르신들에게 맞는 일자리를 개발할 수 있도록 자료를 모은 팀, 의성 청년들을 모아 직접 커뮤니티를 열어본 팀도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을 바탕으로 6주차에는 공유회를 진행했는데, 사실 아쉬움이 많았다. 의성군 주민분들과 관련 부서 공무원분들을 초청하여 진행했는데, 러너들이 원한 반응은 '정말 이런 문제가 있었군요. 해결해보겠습니다.'라는 반응이었지만, '이 문제는 지금도 충분히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이 문제에까지 쓸 예산이 없다.' 등의 부정적이거나 미지근한 반응을 받은 팀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2기 때는 코로나가 심해져 공무원들이 외부 행사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러워지면서, 청년정책계 외의 다른 부서 공무원들은 참여조차 하지 못했었다. 공유회가 끝난 후 일부 러너들은 우리는 뭘 바라보고 이렇게 달려왔나 허무하고 속상해하기도 했다. 


그 부분은 사실 우리의 잘못이었다. 아직 공무원분들이 우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의성 주민들이 겪는 문제가 있고 그 원인은 이것이다라고 발표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업무에 '문제'가 있다'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건 당연했을텐데. 좋은 피드백을 원했다면, 우리가 미리 담당 공무원분들과 라포를 충분히 형성해두었어야 했다. 


특히 빈집 문제를 주제로 삼았던 2조의 경우, 발표 이후 담당 계장님의 반박과 군수님의 비판을 듣고 공유회를 마친 후 많이 울었다. 많이 속상했지만, '러너들이 얼마나 열심히 진심을 다해 했는데 왜 우리의 진심을 몰라주시냐며' 계장님과 군수님을 마냥 탓하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빈집의 경우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긴 하지만 법적으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군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성군은 빈집 문제 해결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매우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의성 주민도 아닌 외지에서 온 대학생들이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며 주민들에게 알리고, 서명서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라도 화가 날 수 있었을거다. 러너들이 발견한 '빈집의 슬레이트 지붕 문제'는 분명히 해결이 필요한 문제였고, 그들은 정말 진심으로 밤낮없이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이건 러너들의 잘못도, 군의 잘못도 아닌, '건드리면 안되는 문제'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러너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충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해결 가능한 크기의 문제'를 골라야 한다는 걸 배웠다. 시간이 무한했다면 어떤 문제든 해결해보고자 노력해볼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약속한 것은 6주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러너들이 6주를 전부 투자한 게 정말 보람 있었다고 느낄 수 있으려면,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우리가 지역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과정이 좋았어도 아쉬움과 찝찝함이 남을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매일 팀 회고를 작성했다.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배운 점, 적용할 점을 성실히 작성했다.


로임캠 때는 팀 회고를 작성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었다. 팀 회고를 매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면서 달리다 보면 회고를 할 겨를이 없어지게 되는 걸 몇 차례의 경험으로 확인했다. 회고는 팀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데, 돌아가면서 자신의 할 말만 쓰고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카카오톡에 체크인/체크아웃만 올리게 하는 형식으로 점점 간소화시켰는데, 돌아보면 결국 회고는 가장 처음에 로임캠에서 진행했던 방식이 가장 맞았던 것 같다. 시간이 들더라도 팀원 전체가 매일매일 '우리는 오늘 무엇을 잘했고, 내일은 어떻게 해보자'라는 걸 공유하는 것이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있어 중요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팀 회고를 부활시키려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참가자들이 회고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기며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은 끝이 없다.



2년차부터 진행한 로컬러닝랩은 문제해결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랩, 테크랩 등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다음 편에서는 로임캠에서 로컬러닝랩으로 전환한 과정들, 로컬러닝랩을 진행하며 우리가 깨달은 요소들과, 그를 반영해서 프로그램을 어떻게 디벨롭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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