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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Nov 06. 2021

쓸모있는 사람

사람의 참된 가치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아주 특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특수 환자들의 구강건강을 돌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수 환자란, 장애가 있어서 몸이 불편하신 분, 자폐나 다운증후군 같은 발달장애, 정신질환자, 치매 등, 평범한 치료를 받기 어려우신 분들을 뜻합니다. 이분들을 섬기는 일이 워낙 고되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명예가 따르는 일이 아니라서 많은 의사들은 이분들을 보는 것을 꺼리고, 환자들은 갈곳 없이 방황하다 저희 병원으로 떠밀려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특수 환자분들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자기 관리를 못할 뿐 아니라, 양치질 같이 아주 간단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집이나 요양원에서 구강관리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특수 환자들은 구강질환이 많고, 치과치료 중에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심각한 경우에는 특수 환자들을 수술방으로 데리고 가서 전신마취로 재운 뒤에 치과치료를 합니다.


수술방은 한정되어있고, 환자들은 너무 많다 보니, 전신마취로 치료를 받으려면 1년에서 2년까지 기다려야 되는 상황입니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병을 더 키우게 되고, 막상 순서가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치아의 상황이 악화되어서 다 뽑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한 번에 충치치료를 20개가 넘게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하루는 평소와 같이 치료를 다 마치고 자폐가 심한 환자가 전신마취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서서히 깨어날 때 기관에 삽관했던 튜브를 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환자가 놀랐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몸에 부착되어있던 ECG 리드와 수액을 받던 정맥주사를 스스로 뜯어내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보통 마취를 하고 깨어나면 약의 기운에 눌려서 환자들이 얌전한데, 이번 환자는 깨어나자마자 힘이 너무 세서 모두들 당황했습니다. 마취과 선생님과 간호사들의 힘으로는 진정이 안되어서, 결국에는 경비원 두 명까지 와서 환자를 진정시키려고 붙잡았습니다. 수술방 안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환자는 사납게 몸부림을 쳤고, 환자의 어머니가 오셔서 안아주실 때 급기야 진정이 되었습니다. 환자를 안아주는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환자를 마취 회복실로 보내고 서류를 작성하며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과 잡담을 하는데 불편한 주제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특수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할뿐더러, 가족들에게도 짐인데, 이 사람들의 삶의 이유와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슴지 않고 토론을 했습니다.


저는 대화를 엿들으면서 처음에는 내용이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스태프들의 솔직한 의견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를 보며 제 스스로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쁜 생각인 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들과 동의하게 되는 저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려고 계속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이 사람들을 돌보는 것일 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이 마음속으로 저의 본분을 되새겼습니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특수 환자들의 가치와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에 대한 질문은 제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저는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항상 선하시다고 믿었기에, 저는 그날 저녁 하나님께 이 사람들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다음 날 저는 도시 근방에 있는 장애인 선교단으로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장애인들을 의사 대 환자로서의 관계로만 만나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서, 장애인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래전에 봉사 신청을 했었습니다. 제가 갔던 봉사 프로그램은 발달/지체 장애가 있으신 성인들을 탁아소처럼 맡아주는 교실이었습니다. 가족분들은 장애인들을 잠시나마 봐주는 것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봉사활동이 진행되는 건물로 들어섰는데, 이상하게도 병원에서와는 다르게 많은 장애인 학생들 사이에서 제가 너무 어색하게 낯을 가렸습니다. 어쩔 줄 몰라 쭈뼛쭈뼛 서있는데 장애인 학생 몇 분이 와서 먼저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도우러 왔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는 제가 쓸모없게 느껴졌고 저는 민망한 마음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가서 숨었습니다.


곧이어 프로그램이 시작이 되었고 진행자가 찬양단을 부르자마자 장애학생들이 너도나도 우르르 앞으로 나갔습니다. 학생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서 율동을 하면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너무 순수한 얼굴로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애학생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손뼉 치며 노래를 하였고, 어떤 분은 흥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뛰어다녔습니다. 어수선하고 질서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분들이 진심으로 즐거워한다는 것이 확실히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진실된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장애인들과 다르게, 구석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제가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1]. 내가 이것을 믿는다면, 지금 하나님 앞에서 과연 누가 더 쓸모 있는 존재일까? 순수한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장애인들과, 내 자존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비교했을 때, 누가 하나님 나라에 더 합당한 사람일까?라는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가치와 쓸모를 저의 기준과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려고 했던 저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비교적 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이, 몸은 비교적 온전하더라도 가식적이고 마음이 영악한 저보다 더 천국에 훨씬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교만하게도 장애가 있으신 분들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로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을 통해서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배우게 된 후에는, 장애가 있으신 분들도 내 삶의 선생님이자 선배님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은 비교적 몸이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을 뿐, 그분들의 가치는 그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삶의 귀중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장애인들이 그들의 소중한 삶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저의 소임을 다하러 병원으로 나아갑니다.


Reference:

[1]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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