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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Aug 28. 2021

내가 당당해진 이유

자신감의 중요성

저는 내성적인 성격에 낯을 가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운을 걸치고 진료를 시작할 때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합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고, 제가 하는 말들과 행동할 때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그분들의 필요함을 파악한 후에, 레지던트와 펠로우 그리고 간호사한테 지시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제가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거스르고 대담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고마운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턱관절/얼굴 통증 (Facial Pain) 클리닉에서 수련을 받았었습니다. 저한테는 그 클리닉이 한주의 가장 큰 고비였습니다. 워낙 사례들이 복잡하고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분야라서 힘든데, 지도교수님이 정말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이 분은 레지던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시고, 답을 모르면 가차 없이 갈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이 특기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7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얼굴에 만성통증이 심한 환자에 관하여 케이스 보고를 하는데, 발표를 마무리도 하기 전에, "환자는 운전석에 있었나? 아니면 조수석에 있었나?" "사고 났을 때 헨들은 오른쪽으로 틀었나, 왼쪽으로 틀었나?" 이런 쓸데없는 질문으로 정신을 흔드셨습니다. 우리가 보험회사도 아니고, 환자 본인도 7년 전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질문에 답을 못할 때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에 관하여 그런 정보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진료를 하겠냐"라고 욕을 퍼부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분명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몇 가지 의미 없는 세부사항 때문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진짜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그 교수님이 제일 얄미웠던 것은, 본인이 지도하지도 않는 세미나에 불쑥 들어와서는 어려운 질문으로 다른 교수님들과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악질적인 교수님이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고, 멀리서 걸어오시는 교수님의 실루엣만 보여도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현상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들과 라운드 (새로운 환자 케이스들을 발표하고 어떻게 치료할지 의논하는 모임)를 하고 있는데, 초대받지 않은 그 교수님이 또 어슬렁거리며 저희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날도 변함없이 또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시는데, 제 동기중 한 명이 더 이상 못 참겠는지 그날따라 따박따박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수치까지 나열하면서 거침없이 답을 쏟아내는 모습에 저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고, 교수님도 아무 말 없이 들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시고 그냥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악당을 물리친 우리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라운드가 끝나고 저는 그 친구한테 찾아가서 너무 멋있었다고, 언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냐고 물어봤습니다. 근데 그 친구가 웃으면서 말하 주길, "내가 아는 대로 대답하고 이상한 질문의 대답들은 내가 다 지어냈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을 때 나도 말도 안 되는 대답으로 받아친 거야. 이 교수님은 본인도 모르는 질문의 답을 그냥 우리를 겁주기 위해서 그동안 던졌던 거야. 네가 당당해져야 해. 너는 충분히 아는 것이 많아. 보잘것없는 디테일에 얽매이지 말고 너 자신을 믿어".


친구는 근거 없는 허세로도 당당하게 말하는데, 올바른 정답을 가지고도 용기 내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되돌아봤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나 자신이 스스로 당당하지 않으면 나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옳은 말을 해도, 제가 머뭇거리고 주저하면 환자들은 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치료를 한다 하여도 환자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저는 병원 안에서만큼은 당당해졌습니다. 환자들이나 교수님과 대화할 때는 또박또박 자신감 있게 말을 하고 더 정확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 자세히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해답을 모르는 환자들의 질문에 직면했을 때에도, 쭈뼛거리는 대신 솔직하지만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씀드리고, 최신 논문을 공부한 후에 정확한 정답을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진실만을 환자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제가 당당해지려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더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더 배울수록 저는 준비가 되었고, 준비가 될수록 저의 자신감도 높아졌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말을 할수록 환자도 제 말에 더욱 집중을 하는 것이 느껴졌고, 저는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해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교수님께서는 저희들을 더 강한 사람으로 훈련시키시기 위해서 일부로 괴롭히시지 않으셨나 가끔 생각해봅니다. 교수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오늘도 저는 환자들을 위해서 자신감을 착용하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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