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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소라게 Nov 13. 2021

환자의 가족

가족의 소중함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환자만큼이나 환자의 가족이나 보호자와 많은 소통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으로는 보통 환자와 가족의 관계가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느낀 점은, 화목한 가정이 있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어떠한 병이 있던지 상관없이 평소 삶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뵙는 이탈리안 할아버지가 계신데, 이분은 고혈압, 심장병, 당뇨, 신장병 등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만성질환이 많으십니다. 이분이 매일 드셔야 하는 약의 종류와 양을 볼 때면, 그 많은 약을 다 드시면 배불러서 밥은 언제 드시는지 궁금할 정도로 몸이 안 좋으십니다. 이 할아버지께서는 매번 병원에 오실 때 할머니와 같이 오십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잔소리가 엄청 많으십니다. 복도에서부터 바가지 긁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할아버지를 달달 볶습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할망구가 또 시작했다고 저한테 불평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 마음 깊숙이는 행복 가득하신 것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할머니가 옆에서 세심하게 챙겨주시기 때문에 할아버지도 관리를 잘 받게 되십니다. 가끔 손자 손녀들 데려와서 자랑하시는데, 그러실 때는 본인의 육체적 고통도 잠시 잊으신 듯합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서 혼자 사시는 환자분들은, 많은 분들이 안색이 안 좋고 무기력하십니다. 평소에 관리를 못받으셔서 단정하지 못하고 치료 후 회복하는데 오래 걸리시기도 합니다. 애정이 결핍해서 그러신지 성격도 많이 안 좋으셔서 간호사나 사회복지사도 가까이 가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제가 레지던트 때 보았던 60대의 특수 환자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이 환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분의 외모가 대머리에 이마가 엄청 넓고, 귀가 뾰족하며, 눈과 눈 사이가 멀고, 얼굴 표정이 항상 멍해있으셔서, 서양 동화에 나오는 마법 생물같이 생긴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지적 장애가 있으셔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데, 힘이 엄청 세고 늘 씩씩한 환자이셨습니다. 가끔 화나면 공격적으로 변하지만 환자의 어머니가 말로 주의를 주시면 바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것도 특이점이었습니다. 최근에 병원에서 지나가다 이분을 잠시 봤는데 앙상하게 삐쩍 마르고 제가 기억하던 것과는 다르게 풀이 죽어 있으셨습니다. 나중에 간호사를 통해서 알고 보니 코로나 펜데믹 기간 중에 환자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라는 큰 버팀목이 없어진 후 환자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 환자에게 보호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족들과 보호자들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가족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이 환자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번은 저와 나이가 비슷한 젊은 환자를 보았습니다. 키가 농구선수같이 크고 체격이 좋은 흑인 환자이셨는데, 명문대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심각하게 뇌손상을 받으신 환자이셨습니다. 이분이 합의금으로 백만 달러 ($1 million)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의 가족들이 그 돈으로 환자를 재활치료에 사용하는 대신 자신들의 집을 사버렸다고 합니다. 당연히 관리가 안돼서 구강건강은 엉망이었고, 환자의 가족들은 치과치료비가 없다고 버텼습니다. 환자가 이미 많은 금액의 합의금을 받았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지원을 거부당하셨습니다. 이렇게 환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병원에서 어느 날 사라지셨습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꼭 필요한 치료를 받으셨기를 바랍니다.


환자가 정신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환자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법적으로 위임장 (Power of Attorney)를 받고 법적 대리인으로서 환자 대신 결정을 내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현병/정신분열증 (Schizophrenia)이 있으신 환자가 법적 대리인인 남편이랑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입안에 거의 모든 치아들이 썩고 곪았는데, 다행히도 앞니들은 신경치료를 통해서 복원을 할 수 있는 치아들이었습니다. 환자의 보호자인 남편에게 치료 옵션들을 말씀드렸습니다. 환자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의 치과치료에 한 푼도 쓸 수 없다며, 정부에서 지원하는 발치로 남은 치아를 다 뽑아버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는 주는 장애가 있는 환자가 65세 이상이면 정부에서는 대학병원 안에서의 발치밖에 지원을 안 해줍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환자는 자신은 제발 치아를 살리고 싶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라는 사람은 귀찮다는 듯이 다 뽑아버리라고 강요를 했습니다. 저는 치아를 복원해달라는 환자의 부탁과, 치아를 다 뽑아버리라는 법적 대리인인 남편의 요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의 안전과 건강을 우선으로 두지 않는 남편의 무책임한 모습이 화가 나고 유감이였습니다.


환자를 보살피려는 가족들의 마음은 바른 곳에 있지만, 가족들이 무지해서 환자한테 도움이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가장 흔한 사례는 전신 마취하기 당일날 아침밥을 든든히 먹이는 가족들입니다. 분명히 수술 전에는 공복이어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말씀해드렸지만, 수술 직전에 오늘은 특별히 아침밥을 잘 먹였다고 해맑게 자랑하는 가족들을 보면 빡칩니다. 마찬가지로 어렵게 특수 환자들의 충치치료를 다 마쳤는데 치료받느라 수고했다고 바로 사탕을 물리는 가족들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분들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건 포기했고 이제는 차라리 자일리톨 사탕을 권해드리고 있습니다.


환자의 가족의 과도한 보호가 환자에게는 큰 피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가족이 의료진을 믿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참견을 하거나 의심을 하고, 의사의 조언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환자가 정말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습득한 잡지식을 바탕으로 가족들이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서 의사에게 지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들의 진료 훼방이 너무 심해질 때면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해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지만, 저희 병원에 한 모자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고령의 할머니와 중년의 아들이 오셨는데,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시고 영어를 못하셔서, 아들이 할머니 대신 소통을 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서 돌보려고 했지만, 그분만의 '지극정성'이 할머니에게 오히려 해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접수를 하자마자 자신의 어머니를 함부로 대하면 법적 고소를 하겠다고 협박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 누구도 법적 고소하겠다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병원 스태프들이 그 환자 근처에 가는것을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머니의 가정의로부터 받은 보고서를 통해서 건강정보를 확인하는데, 환자의 아들은 그 안에 있는 내용이 거짓이라며 다른 의사들 욕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려고 한다는 망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치아는 대부분 뿌리밖에 남지 않고 감염이 되어서 발치를 해야 하는데, 할머니의 건강이 상당히 쇠약하시고 뼈가 잘 아물지 못하는 약물을 투여받고 계셔서 구강외과 전문의를 통해서 치료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치료를 안 하면 감염된 치아가 다른 건강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전문의의 치료를 받으시는 것을 권해드렸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의 이를 뽑는것에 완강히 반대했고, 다 썩어 곪아버린 치아를 뽑지 않고 치료해달라는 무모한 요구를 했습니다.


오랜 설득 후에 전문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전문의 선생님께서는 환자의 보호자인 아들에게 치료의 중요성과 연관된 위험/부작용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는데, 환자의 아들이 이번에는 무조건 부작용이 있으면 안 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세상에 부작용을 일으키려고 하는 의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부작용이 절때 없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나긴 실랑이 끝에 아들은 어머니가 그다음 주에 발치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동의하였습니다. 발치 수술 당일날 환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환자의 아들에게 연락해보니 어머니가 피곤해하셔서 쉬게하시려고 안왔다고 했습니다. 환자가 일방적으로 예고 없이 예약시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의 선생님과 그다음 예약을 위해서는 몇 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자 환자의 아들은 아픈 어머니를 두고 기다릴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화를 냈습니다. 제가 그래서 다른 전문의 선생님께 사정사정해서 그다음 주에 어렵게 다른 예약을 해드렸습니다. 또 다른 전문의 선생님과의 발치 수술 날, 환자와 아들은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전문의 선생님은 환자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치료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하셨고, 환자의 아들은 지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어머니를 봐달라고 완강히 요구를 했습니다. 간호사들이 환자가 늦게 와서 오늘은 치료할 시간이 없다고 설명하자 자신의 어머니를 소홀히 대한다고 병원 스태프들에게 심한 욕설과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환자의 보호자가 스태프들에게 폭력을 가했기 때문에, 환자와 아들은 병원에서 영구적으로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환자는 다른 병원을 찾아가도록 되었습니다. 때로는 보호자들은 자신이 환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본인의 최선이 환자가 안전한 치료를 받는데 걸림돌이 될 때도 있습니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환자가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의사의 안내와 지시를 잘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화목하고 좋은 가족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좋을 때뿐만 아니라 힘들거나 아플 때도 서로 의지하며 어려움을 같이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같은 편이 있는것만으로도 환자의 삶의 질은 월등히 좋아진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해도 가족의 소중함을 대체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진들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내가 우리가족의 건강에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진출처: https://uptownmedical.ca/wp-content/uploads/2017/06/iStock-51560537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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