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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정말 Feb 23. 2023

삼신할매요 힘을 좀 주이소

"항문에다가는 힘 빼시고 엉덩이에다가 힘을 주세요!

복부 아래쪽에다가도!! 멈추지 말고 계속 힘!!! "

..

아기의 머리가 보이면 산모에게 외치는 말이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없는 내가 당최 어디에다가 힘을 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산모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걸 보면 삼신할매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

출산을 앞둔 산모들에게서는

아기와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 산통에 대한 두려움과

어떠한 비장함이 섞인 표정을 엿볼 수 있다

남산만 한 배, 숨을 제대로 편히 내뱉지 못하면서도

이깟쯤이야 하는 이 산모들에게서

전투에 참전하는 용사 같은 용맹함 비슷한 것을 느낀다 아기를 품으면 그 용맹함이 점차 차오르는 건지

같은 여자이지만 그저 그녀들이 대단해 보인다

..

결혼하면 무조건 아기는 하나 이상은 낳아야 한다는 의무가 부부들에게 주어졌던 예전과는 다르게,

딩크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출산의 선택지가 많아진 요즘이지만

(선택지가 많아진 건지 선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건지)

나는 몇 년 전에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다


산부인과 일을 시작하기 전엔, 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산 생각도 없었다

남편과 둘이 살아도 퍽 좋을 것 같았다

세계 일주이니 취미활동이니 뭐니 하면서

무엇보다도 출산이 무섭기도 했고

출산 전의 몸매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사라질 내 삶과

커리어의 단절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출산을 꼭 하겠노라 다짐을 하게 됐다


생각이 크게 바뀌게 된 데에는 역시 출산 이후 광경에 있었다

기진맥진한 산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와의 첫 만남

두 눈에 그렁그렁 한 눈물

같은 감격을 느끼고 있는 배우자와의 말 없는 눈 맞춤

죽었다 깨어나도 아기를 낳지 않고서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없겠다는 이유가 있었다


산모 중에는 본인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 행복하다는 이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와 내 남편의 얼굴이 반씩 섞인 아기를 낳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졌다

..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의국 교수님들께서는 슬하에 자식을 많이 두셨다

비교적 젊은 교수님들까지도 2명 이상의 자식을 두시고 많게는 5남매를 둔 교수님도 계셨다

전공의들 전문의들한테도 꼭 아이를 가지기를 권하신다 자식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줄 아시냐고 하면서

너희가 산부인과 의사들인데 더 잘할? 거라며

..

출산의 고통이 인간이 인생에서 느끼는 고통 최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통증학의 발달로 무통주사의 효과가 좋아 (무통천국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많은 산모가 그리 힘들지 않게 아기를 낳았다고 말했다 제왕절개 후 주는 자가통증주사도 효과가 좋다


출산 이외에도 산전 검사들을 통해 초기에 고위험 산모들을 진단해서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보내기도 하고

상급병원에서는 그런 산모들의 초응급 상황 발생 시

바로 처치를 할 수 있도록 비상 대응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

적어도, '출산'만 놓고 위험요소에 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놓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누구는 '너는 해보지도 않고 그럴 말할 자격이 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사실 무섭기는 하다 그렇지만 곧 나도 엄마가 되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나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을 예비 엄마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싶다


바로 옆에서 지켜봤는데 다들 잘 해내셨다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그러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우리 같이 삼신할매한테 잘 보살펴달라 하자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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