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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정말 Feb 25. 2023

철쭉

여느 때와 다름없는 교수님과의 회진시간

한 병실에서 꽃향기가 났다.


철쭉꽃이 꽂힌 플라스틱으로 만든 병 여러 개가

창가에 놓여있었다.

철쭉이 피었길래 따봤어요 하고 말하는

한 환자의 마른 얼굴에 수줍음이 번졌다.

부서질 것 같은 앙상하고 가녀린 몸

빠진 머리카락을 덮은, 계절에 맞지 않는 털모자


누가 봐도 암투병 중인 것 같은 그녀이지만

가끔 소녀 같은 그 행동들이

건조한 병동 분위기를 풀기도 했다.


그렇게 밝은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항상 혼자였다.

보호자는 아들 하나.

하지만 수 없는 입원기간 동안에 아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철쭉을 한 아름 따왔던 그 시간으로부터

두어 해가 지났을까

가녀린 그 몸은 암세포를 결국 이기지 못했다.​


일어서기만 해도 볼 수 있는 창문너머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와 철쭉을

그녀는 이제 볼 기력도 없고

보고 싶은 생각도 없는 듯했다.

멈춰버린 장 때문에 끼어진 콧줄

진통제로 텅 비어버린 눈

물 찬 폐 때문에 거칠어진 숨소리

유일하게 두 눈이 반짝이는 순간은

교수님과의 만남 때뿐

부축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어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녀는

말투가 거슬린다며 갑자기 간병인을 해고했다.


그녀의 수족이 된 간호사들이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야

그녀는 조용히 나를 불러

통장에 백만 원도 없어서 값싼 간병인을

찾고 있노라 조용히 읊조렸다.

그리고, 이제 곧 이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했다.


아들에게 연락을 해달라 했다.

아들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며

그렇게 구한 값싼 간병인은 이내 할 일이 없어졌다.

그녀가 이제 말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

수 십통의 전화를 아들에게 걸어 보았지만

그녀는 홀로 쓸쓸하게 목숨을 거뒀다.


아들의 얼굴을 마주한 건 사망선고를 내리고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낯짝이나 보자 할 심산으로 하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 그에게 갔다.

자신의 남은 통장잔고와 죽을 날을 셈하며

눈물로 지새웠을 그녀의 심정이 상상이 가질 않아서 그녀를 대신해 어떤 모진 말이라도 하고싶었다​.

.......


말라붙은 살가죽에 얼굴을 맞대던

나보다도 더 젊은것 같았던 아들


화사한 봄날의 철쭉 같던 엄마의 얼굴이

점점 시들해져 가는 걸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침대에 고꾸라져 연신 미안하다며 울고 있는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뭇가지 같던 그 손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들의 손이 끼워졌지만

결국 온기는 전해지지 못했다.

이미 시들어 버린 그 몸에 한 조각의 영혼이라도 남아있었더라면 그 영혼은 기뻐했을까 아니면 슬퍼했을까


그녀가 떠나고

봄이 돌아와 철쭉을 볼 때면

해사한 그녀의 얼굴이 이 따끔씩 생각이 난다.


그곳에선 아무런 걱정 없이   

꽃처럼 아름다운 것들로 둘러싸여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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