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내 조카들 이든아 이안아
큰언니의 난소 제거술로 정신없다가
다시 평화가 찾아왔을 때쯤
불길한 둘째 언니의 전화가 왔다.
둘째 언니네는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자궁조영술, 정자검사, 혈액검사이 정상이라
정액주입술의 성공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언니가 살고 있는 도시엔
익히 잘 알려진 난임병원이 없어
대전으로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며
임신시도를 했었다.
묵직한 아랫배 감각에 해본 자가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을 보고 언니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초음파, 피검사를 해보고
자연유산 중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1주 이내로 생리를 할 거라고 했던 의사말과 다르게
출혈도 없고, 테스트기의 두 줄이 더 진해졌다.
자궁 외 임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 피검사도 하고
초음파도 한번 더 봐달라
난임 병원 의사에게 말해봤지만
이제껏 했던 테스트기를 몽땅 가져와 두 줄이 선명해짐을 설명하는 언니에게 '유난이다'라는 말을 하며 곧 생리를 할 테니 기다리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그들도 유난 떠는 여자라는 눈초리로
검사확인을 위해 재내원하라는 말만 했었다.
초음파 검사 한번만 해달라는 끈질긴 부탁으로
심드렁하게 검사를 끝낸 의사는 언니가 진료실에
들어오기도 전에 ‘뭐 보이는 것도 없으니’ 그냥 집에 가시라는 말만 듣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지만 피검사 결과 beta-hcg 수치 15만을 찍었고
검사결과를 확인한 병원에서 다급하게 언니를 불렀다.
그제야 의사가 초음파를 자세히 보더니
자궁 외 임신낭을 찾아냈었다.
'동생이 산부인과 의산데' 라며 운을 뗀 언니를 보고
병원 측에서 언니 눈치를 갑자기 보기 시작했고
진료비는 받지 않겠으니 속히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연결해 주겠다 했었다.
둘째 언니는 그 피수치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야 나에게 연락을 했다. 걱정시키기 싫었다며..
(이 언니들은 동생을 산부인과의사로 뒀는데 왜 말을 안 하는 것인가...!!!!!)
이상하게 그 전화가 기억이 난다.
받기 도전에 소름이 돋았던 불길했었던 그 전화
언니의 피검사 수치를 듣고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 났다..
다행히 임신낭이 터지지 않아서
별 큰일없이 한 쪽 난관을 제거하는 응급수술을 했다
자궁 외 임신이 위험한 이유는
임신낭이 터져 출혈이 발생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대량 출혈이 발생하므로 순식간에 저혈압 상황에 갈 수 있고 심하면 쇼크에 빠져 자칫하면
전신 장기부전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을 받을 때 자궁 외 임신을 항상 고려하라고 배웠는데 그 기본적인 것들을 놓친 병원들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나도 숱한 환자들을 보고 진료를 하는데
타성에 젖게 되면, 저런 태도를 가지게 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데 어떻게 면밀하게 환자를 잘 살피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싶다.
환자 보기를 귀찮아하는 의사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이런 상황을 통해
하게 된다.
.......
어쨌거나, 나팔관 한쪽을 제거한 둘째 언니는
자궁 외 임신일지라도
그렇게 사라져 버린 아기에 대해 기도를 했다고 한다.
언니를 내쳤던 의사들을 위한 기도도 같이했다며
그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해서
자신과 같은 환자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는 둘째 언니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당신은 성자입니까..?
둘째 언니의 수술 이후
내 짝꿍 홍선생 아버님이 하시는 난임병원으로
언니를 보냈고 거기서 시험관시술을 성공 한 언니는 지금 벌써 임신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첫째 언니도
임신 1분기를 무사히 잘 넘기고, 2-3분기도 잘 넘겼고
다태임신이라 조산을 하지는 않을까, 몸무게가 많이 적진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38주에 건강하게 수술을 받아 출산을 했다.
얼마 전 이둥이들이 100일 사진을 찍었다.
복강경으로 본인들 집 옆에서 대공사를 했음에도
잘 살아남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애기들을 볼 때면 눈시울을 붉어진다.
언니들의 시험관 시술과 인공수정 과정을 통해 난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피부로 느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흔하지 않은 합병증들의 연쇄 발생으로 절망도 많이 했다.
언니들이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에도
언니들에게서 온 부재중 연락 때문에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다시 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진아~ 막둥이 심장 떨어질라 전화 작작해야겠다'
'언니야 안 그래도 전화할 때 얘 울겠더라 니 울었나? 주야?' 하면서 깔깔 거리는 언니들의 얼굴을 다시 보니 얄미우면서도 얼마나 다행인지
아가들이 시술 한 번만에
우리에게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
이 아가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막내이모랑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기다려진다.
너네 엄마들이 얼마나 죽을 동 살 동했는지 아냐며
언니들 진짜 고생했고
막내이모 없었으면 어쩔뻔했냐고
엄마랑 이 막내이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ps
1. 만약 오른쪽 난관을 절제했다면
왼쪽 난관이 오른쪽 난소에서 나오는 난자를 휙 채간다고 하니 한쪽 난관이 없다고 임신율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2. 난소도 한쪽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임신이 안되거나 임신유지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만 한쪽에서 계속 난자가 만들어지므로 폐경이 빨리 올 수 있다. 폐경이 빨리와도 호르몬제를 잘 복용하면 갱년기 증상을 잘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