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에 이끌려갔던 부산의 한 작은 동네 목욕탕
장수탕
여기서 목욕을 하면 장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
엄마가 목욕탕을 가자고 할 때마다 아픈 시늉을 하며 난리부르스를 췄지만 머리 몇 대 쥐어박히고
입만 대빨나온채로 엄마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쫄래쫄래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탕에 들어가서는 숨만 막히고 뭐가 시원한지도 모르겠는데 아따~~ 시원하다! 를 연신 남발하는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 남자친구는 있냐, 공부는 잘하고 있냐는 등의 온탕만큼이나 숨 막히는 질문공세를 받았다.
큰 온탕이 하나, 어른 두어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은 열탕 하나, 버튼 누르면 살이 따가울 정도로 수압이 센 물줄기가 나오는 냉탕 하나 그리고 조그마한 사우나가 있었던 규모는 작지만 구색을 다 갖춘 목욕탕이었다.
나는 가끔 방학식 다음 날이나, 친구들이랑 다 같이 가는거면 동네를 벗어나 헬스장과 같이 운영되는 한신스포렉스 목욕탕을 가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색을 낸 이벤트 탕이니, 약초 탕이니 해서 탕 안에 오래 있지 않아도 되는 미지근한 탕도 있었던 규모가 큰 목욕탕.
하지만, 엄마는 무조건 목욕탕은 장수탕만 고집했다.
아마 그 이유는 세신 해주는 분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산 사투리로 나가시 아줌마.
엄마와 함께하는 목욕탕을 가기 싫어했었던 이유는
무자비하게 때를 밀려버려 그날 저녁엔 점상출혈이 있을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복수를 할 셈으로 엄마 등의 때를 세게 밀면 밀수록 어째 더 만족도가 더 좋아져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박봉이었던 공무원 아부지 월급으로 자주는 아니지만,한 번씩 내가 시험을 잘 봐왔다던가
명절을 쇠고 세뱃돈을 모조리 엄마에게 뺏긴 후라든가그럴 때면 목욕탕에서 한 번씩 나도 세신을 받았다.
장수탕 세신사 아줌마는 아주 화려한 망사 팬티를 입으시고 곱슬곱슬한 긴 파마머리를 한 번에 틀어 묶고 금목걸이를 한 인상이 찐한 분이었다.
그렇지만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가느다란 팔과 다리에 비해 불러있던 배였다.
배가 좀 나온 것 같다는 주변 말에 그저 일이 고단하여 밥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대답했던 세신사 아주머니는 아주 솜씨 좋게 때를 벗겨내셨다.
엄마의 손길과 다른, 부드럽지만 강한 때밀이를 경험하고서는 이거 때가 제대로 밀리나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뒤집으라는 아줌마의 터치에 몸을 일으켰을 때 후드득 떨어지는, 그리고 떨어져 있는
내 몸의 일부분이었을 그것들을 보며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줌마의 배는 밥을 많이 먹어서 부른 배 치고는 너무 불러있었지만,
아주머니는 일이 바빠, 애들 챙기느라, 집안일을 하느라...라는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들의 틈새에서 쉽없이 허덕이며 그저 관성대로 틀에 박혀버린 일들을 해내느라 본인의 몸에 대한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
아따 아무 증상도 없으니까 걱정 좀 하지 마이소
내 몸은 내가 안다 아입니까 호호
....
본인의 때밀이만큼이나 손색이 없었던 입담을 펼치며 그렇게 장수탕의 스타였던 아주머니는 바삐 일을 하셨다.
입시준비를 하며 목욕탕과 담을 쌓고 산지 몇 년
수능이 끝나고 오랜만에 다시 찾은 장수탕에선 그 세신 아줌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세신사 아줌마의 근황을 물었고 엄마는 아줌마의 사망소식을 전해 당황했었다.
...
그만둔 지 한 일 년 됐을끼다. 배가 윽수로 아파가꼬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암이라고 했다드라
이미 온데만데 퍼져가꼬는 수술도 제대로 못 받고 갔다 아이가..
...
엄마보다 더 젊었던 세신사 아줌마의 죽음은 엄마에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 같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소화가 안된다면서 연신 가슴을 두드리다가 구토까지 하신 걸 보면..
응급실에 그 세신 아줌마처럼 축구공만하게 배가 불러서 오는 분들이 적어도 한 두 달에 한분 씩 있다.
대부분 삶을 치열하게 살고 본인들의 몸을불살라 일을하시는 분이다.
당신들은 본인 몸을 슈퍼맨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증상들의 미미한 신호들을 무시해버리고 만다.
그냥 피곤이 오래 누적돼서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보통 배가 불러오기 전에 복부 초음파나 복부 단층촬영을 주기적으로 검진만 했더라도 말기 상태까지 가진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많다.
보통 배에 종괴가 만져지는 환자분들은 (부인과질환이 아닌 경우도 많지만) 자궁육종 난소암인 경우도 있고 때에 따라 자궁근종, 선근증으로 양성질환일 경우도 가끔 있었다.
위험한 상태라 당장 수술하셔야 한다는 말에도
"직장을 쉬지를 못하는데.... 아이고.. 어쩌나.." 하며 경제적활동 중단에 대해 걱정을 하신다.
수술을 한다거나 항암치료를 한다 해도 5년 생존율이 10% 안될 정도로 원격전이 진행이 많이 된 말기 환자들이 많았다. 앞으로 얼마간 살 수 있을지 내가 감히 점칠 수 있겠냐마는...
생존기간이 얼마정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에 그제야 환자분들은 심각성을 깨닫고는 울부짖는다..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하시며..
우리나라는 건강검진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무료인 경우도 많고(검사에 따라 추가비용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고 좋은 장비들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값싸고 접근성 좋은 검사가 도처에 있음에도 안타까운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아무래도 삶이 바쁜 환자 개개인의 일상 때문이 아닐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챙기다 본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이다.
내년에 검사하자... 아 놓쳤네... 내년에 하지 뭐... 아이고 또 내년에 하자...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엔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고서야 병원에 오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바쁘고 숨고를 수 없는 인생의 레이싱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건강검진만이라도 나를 위해 내 몸을 검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다른 행태의 방법이며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 깨달을 수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