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식당
오늘은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하기로 했다.
특이하게? (난 특이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우리 가족 외식 메뉴는 늘 어른 위주다. 먹는 것에 큰 뜻이 없는 아이를 위해서 어른 2명이 희생하는 것보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의 만족감을 선택한다. 요즘 아이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고, 끼니에 대한 개념이 크지 않다. 우리 아이도 늘 간식을 달고 산다. 그렇기에 밥에는 큰 흥미가 없다.
한마디로 아쉬운 게 없는 거지.. 그럴 만도 하다.
유치원 점심 한 끼 잘 먹고 다니는 것에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우린 맞벌이고,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내 욕심대로? 키울 수 없는 현실을 일찍이 받아들였다. 사실 그게 속 편하다. 내 속편 하자고? 맞다. 내 속이 편해야 아이한테도 긍정적인 정서가 전달될 거라고 생각하고, 결론적으로 아이한테도 그게 좋다!
최소한의 규율만 정하고 나머지는 아이에게 맡기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아침엔 굶고 가더라도 과자, 사탕, 젤리 등 불량식품 포함 간식은 안됨. 티브이는 유치원 숙제, 씻기 등 본인이 할 일을 다하고 볼 수 있는 것 등이다. 물론 완벽하게 지켜지진 않는다.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단골 곱창집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우리 얼굴을 보고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리고 우리 아이를 한번 보더니.. 정말 ~ 많이 컸다고 계속 쳐다보신다 ㅎㅎ
연애했을 때부터 갔던 곱창집인데 아이를 낳고 곱창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싶어서 유모차에 애를 태우고 곱창집을 갔었다.
신생아를 데리고 곱창집에 가기엔 많은 용기들이 필요하다. 곱창을 구울 때 나는 연기, 사방으로 튀는 기름, 냄새.. 집에 돌아와 옷을 벗으면 속옷까지 곱창구이 냄새가 배어있다. 한입도 데지 않은 아이 옷까지 다 벨정도니.. 여러모로 아이들과 특히 신생아랑은 당연히 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렇게 응애응애 하던 아이가 다 커서 컵라면도 말아먹는 모습을 보면 내가 식당 아주머니라도 신기해서 계속 쳐다볼 것 같다.
방목과 방임은 한 끝차이지만 의미는 완전 달라진다. 나는 방목형 육아를 하고 싶다.
방임, 방치가 아닌 아이와 나의 경계선을 지키며,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선택했으면 책임을 질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렇다고 너무 큰 인생의 숙제를 선택하게 하진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ㅎㅎ
우리 아들은 태어난 지 3개월 = 100일 때부터 낯을 무척이나 가렸다. 우리 아이는 양가 집에서 첫 손주다. 얼마나 새롭고 이쁘고 귀했겠는가?
특히 우리 아빠와 어머님은 우리 아들을 보면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셨다. 쿨내 진동하는 우리 엄마는 그런 아빠를 늘 뒤에서 바라보며 애 그만 울리고 엄마한테 보내~라고 경계선을 지켜주셨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아빠 너무 우니깐 이리 줘~라고 쌩 데려가는 것보다 엄마가 쿠션역할을 해주면 에이고 이놈 ~ 서운한 마음과 함께 아이를 건네주었다.
이럴 때도 보면 참 밸런스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둘 다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둘 다 무관심했다면 불편한 감정이 생겼을 테니깐.
어른들은 아이가 똑똑해서 그런 거라고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똑똑한 거랑 낯가리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아이가 눈치도 빠르고 감각이 좋아서 빨리 인식하는 거라나? 묘하게 설득된다. 근데 그게 팩트였다. 굉장한 센서티브한 아이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다. 우리 아들도 벌써 사회생활한지 6년 차다. 7세에 6년 차 대단하지 않은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돌쟁이를 가정 어린이집에 보낼 때 내적으로 고민 아닌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전업주부였기에..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너무 빨리 보내는 건 아닌가?라는 스스로의 자책감과 이제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해”라는 나를 위한 격려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 같다.
후자의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아이는 어린이집 앞에만 오면 잔뜩 긴장한 표정과 그야말로 오열을 넘어 절규를 하듯.. 세상 무너지듯 울면서 나를 꽉 잡고 놓지 못했다.
마치 몸 일부를 떼어내듯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서는 그때의 그 심정..
하.. 옳은 선택일까?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선생님들이 잘 다독여주셨던 거 같다. “어머님 아이 진정하고 잘 놀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 그 말이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
물론 키즈노트에 올라온 사진들 절반이 울상이거나 울먹이는 표정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아이의 인생에서는 엄마와 떨어지는 그 순간이 가장 불안하고 그 불안이 고통과 힘든 시간일 수도 있지만 성장에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하다. 엄마랑 떨어져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엄마가 다시 돌아온다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그렇게 배우며 성장하지 않았을까?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어린이집 적응 기간 6개월, 소수로 모인 교실 수업은 잘 참여를 하는데 거실에 원아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하는 활동수업은 거부하였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고, 억지로 참여시키지 않고 아이 옆에서 지켜봐 주셨다. 참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선생님은 많은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데 동 떨어져 있는 아이가 성가시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억지로 참여시키는 것보다 충분히 관찰하고, 지켜봐 주면 금방 적응할 거 같다고 아이를 격려해 주고 기다려주셨다.
전업주부에서 워킹맘으로 업을 바꿀 때 풀타임으로 일을 하려면 하원시간을 지킬 수가 없다. 1년 넘게 구직활동 끝에 어렵게 합격 통보를 받고, 진짜는 지금부터!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에 하원 이모님을 구해본다. 운 좋게 바로 연락이 왔고 게다가 선생님 경력도 있는 너무 좋으신 분이었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걱정하는 나에게 “어머님, 나가서 돈 버세요! 아이는 저희가 키울게요! 저희가 도울게요!”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사실 엄마도 신랑이 돈 잘 버는데 애 놓고 어딜 그렇게 나갈라고 하냐며..
엄마! 그럼 아이 다 크면 나는? 그때 나는? 뭐해? 버럭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엄마는 아니 ~ 애도 어리고~ 힘들게 나가려고 하니깐 그렇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동동대는 딸이 안쓰러워서 하신 말이겠지만. 그땐 그렇게 상처가 되었다.
마치 나에게는 네가 무슨 일이야~ 그냥 살림이나 하다가 그렇게 살면 되지.. 내 인생에 대해서 1도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뱉은 말에 상처를 받을 만큼 약해져 있었으니깐.
신랑은 너 이제 안 된다고 여러 번 내 마음을 할퀴기도 했다. 그도 물론 여러 번 면접과 낙방을 번복하는 내 모습을 보고 짠하게 여겨서 그랬을 거다.
나쁜 마음으로 한 말들은 아닐 거다.
나는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 그녀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지만 난 잘하는 것도 없고, 어렸을 때 이렇다한 마음속에 품어놓은 재주도 꿈도 없었는데.. 영화 마지막 장면은 내 가슴을 더 막막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내 인생을 나 만큼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렇기에 나에 대해서 내가 더 보살피고, 더 물어보고 관찰해야 한다.
내 인생에 관한 선택에는 조언 따위는 필요 없다. 나보다 더 많이 고민 안 했을 테니깐.
사실 조언보다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을 받고 싶었던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