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장을 받고 선서를 하다.
<임용장, 성명 ○○○, 국민학교 교사에 임함. ○○국민학교 근무를 명함.>
나는 1986년 2월 5일 안산의 78 학급 대규모 학교로 발령이 났다.
‘국가공무원법 제55조에 공무원은 취임할 때에 소속 기관장 앞에서 대통령령 등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선서하여야 한다.‘
교육장님 앞에서 공무원 선서를 했다.
3.1자 발령이 아닌 중간 발령이었기에 혼자서 하는 선서가 얼마나 떨리고 무겁게 다가왔는지..’ 정말 진짜로 교사가 되었구나.’라는 마음에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선서!!!
본인은 공직자로서 긍지와 보람을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서합니다.
본인은 법령을 준수하고 상사의(직무상) 명령에 복종(복무)한다.
1. 본인은 국민의 편에 서서 정직과 성실로 직무에 전념한다.
본인은 창의적인 노력과 능동적인 자세로 소임(맡은 임무)을 완수한다.
본인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라도 업무상 지득한(알게 된) 기밀을 절대로 누설하지 아니한다.
본인은 정의의 실천자로서 부정의(을) 발본(뿌리 뽑는데)에 앞장선다.
위에서 선서한 사항에 대해서는 끝까지 국가와 국민에게 책임질 것을 서약합니다.
선서 내용은 공무원의 정체성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며 공무원이 된 순간부터 퇴직하는 그날까지 ‘공무원 선서'의 내용을 지켜야 한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선서가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괄호 안의 부분으로 일부 수정되었다. 궁극적으로‘맡겨진 업무를 정직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창의적으로 수행하는 청렴한 사람’이 공무원이다. 공무원 선서를 잘 지키면서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훌륭한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들을 텐데 ‘나는 안 잘린다. 너도 안 잘린다’
‘철밥통’과 ‘불친절의 대명사’로 불리니 참으로 안타깝다.
처음 뵙는 교감 선생님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발령을 받고 학교에 가니 친절하고 상냥하게 필요한 서류를 안내해주고 직접 사진관까지 동행해 주셨다.
‘교감 선생님이 참 친절하시네. 참 감사하게도 좋은 학교로 발령이 났어.’하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1982년에 교육대학은 4년 제로 학제가 바뀌었고 나는 교대 4년의 첫 입학생이 되었다. 2년 동안 교대 졸업생의 공백으로 교원 수급이 원활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거의 일 년을 기다려 발령이 났다. 그 덕분에 무엇이든지 가능한 열정이 넘치는 교사로 준비되었다.
교사가 처음인 나에게 78 학급의 대규모 학교는 정신이 없었다. 교실 부족으로 2부제 수업을 했기에 아침부터 어수선하고 정리가 되지 않아 아이들도 안정이 안되고 학교가 전체적으로 부웅 뜬 느낌이었다.
오후반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거의 마지막 시간은 공부보다는 교실을 정리해서 비워주어야 하기에 학생들을 무사히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오기 일쑤였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무언가에 이끌려서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로 하루 일과를 보내고 대표 공개수업, 교사 합창대회, 운동회 무용, 청소년단체 지도 등 경험해보지 않은 힘들고 어려운 업무가 맡겨진 관계로 발등의 불을 끄는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나는 선서 1번∼3번까지의 자세로 모두 받아들였다. 열정으로 무장한 나도 많이 지쳐갔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무심해져 가고 열심히 하면 더 맡기고 더 해야 하는 학교 구조에서 열정과 노력을 보이지 말고 조금씩 숨겨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발령 첫날부터 신규교사로서 자신이 맡은 학생에 대한 전적인 책임과 동시에 20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경력 교사와 같이 똑같은 업무를 해야 했다. 나의 역량 여부에 상관없이 주어진 업무를 오로지 나의 개인적 경험에 의지하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교육대학에서 배웠던 경험을 살려 3학년의 운동회 무용을 준비하고 있을 때 어느 남교사는 자신이 직접 학년의 무용을 구상하고 안무를 짜서 4학년 전체 아이들을 연습시켰다. 남녀의 역할과 보수적인 학교 문화에서 볼 수 없었던 아주 인상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뒤로는 학교에서 한 번도 접할 수 없는 귀한 광경이었다.‘새로운 것을 배우고 공부하고 왔으니 잘할 수 있겠지! 우리도 신규 교사일 때 선배교사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어. 그러니까 너희도 당연히 해야지!’하며 신규교사의 모든 것을 빼먹는 악순환 구조의 학교 문화를 탓해야 하나? 신규교사가 발령을 받아 학교에 오면 얼마 동안은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동료 교사에게 물어보고 자료를 찾아가며 노력했으나 힘들고 외로웠다.
그러나 경험이 곧 자산이듯이 경험이 쌓여갈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교사로서 재능을 나타냈다.
선배인 경력교사들이 신규교사인 나를 많이 위로하고 마음 써주는 차원을 넘어 짊어진 짐을 나눠지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못한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문제의식보다 모든 상황을 경험으로 받아들여 쌓아 가야 한다는 신규 교사로서 상황을 받아들였다. 불평과 불만보다는 선배 교사들이 나를 챙겨주는 관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중요한 일은 원래 힘이 들고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 나는 초보교장입니다.(p62~p65참고)
- 유튜브: 노래하는 짱쌤TV( https://youtu.be/Id87LvjeAx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