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에는 공통된 조건이 있다. 그 관계 안에는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다시 맞추지 않아도 되는 자리.
이 조건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연인 사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서로를 붙잡아 두려는 관계는 가까워 보이지만 쉽게 지친다. 반대로 서로의 자리를 허용하는 관계는 멀어질 수 있어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
아이에게 이 자리는 부모가 늘 같은 방식으로 존재해 주는 공간이다. 언제든 다시 다가갈 수 있지만 다가오지 않아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 자리. 이 조건이 갖춰지면 아이는 멀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계가 자신을 잡아당기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를 붙잡지 않을 때 아이의 멀어짐은 더 이상 시험이 아니다. 그것은 성장 과정의 일부가 된다. 이때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기다림이 아니다. 자기 자리 유지다. 아이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 자기 삶을 비워 두는 것, 아이의 선택에 따라 자기감정을 흔들리게 두는 것. 이 태도는 아이에게 안정이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안정이 되는 것은 부모가 멀어짐 속에서도 자기 삶을 지속하는 모습이다. 부모가 자기 삶을 살고, 자기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중심을 지키는 상태. 이 상태가 있을 때 아이는 안다. 멀어져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는 멀어지되 끊지 않는다.
부모 역시 아이를 붙잡지 않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균형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부모가 먼저 관계의 구조를 바꿔야 가능해진다. 아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조정하던 구조에서 부모와 아이가 각자의 중심을 갖는 구조로. 이 변화는 아이를 자유롭게 만들 뿐 아니라 부모를 가볍게 만든다.
이 장의 결론은 이것이다.
멀어짐을 허용할 수 있는 관계만이 끊어지지 않는다. 붙잡지 않아도 되는 관계만이 다시 만날 수 있다. 아이는 부모가 자기 삶을 살 때 부모 곁에 남는다.
다음 장에서는 아이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이 방임과 어떻게 다른지를 다룬다. 붙잡지 않는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지 조금 더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