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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Dec 09. 2022

잠을 위한 송(送)가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연극① <맥베스 레퀴엠>

고전을, 특히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명확한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해석의 여지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맥베스 레퀴엠>이 정동극장에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민음사의 <맥베스>를 사 읽었다.

서울의 척추인 한강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곡엔 은유가 흐른다. 그 강은 태연한 척 흐르다가 일순간 범람하는데, 그때 뒷골을 타고 오르는 게 셰익스피어가 파고드는 존재 본연에 대한 사유다. 답 없는 질문, 끝없는 논쟁.

죽음은 뭘까? 단순히 삶의 반대일까? 아름다운 것은? 추잡한 것은? 인간은 아름다운가? 아름다움 아닌 것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맥베스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모차르트의 유작인 <레퀴엠>의 악장을 소재로, 세계대전 이후 스코틀랜드의 재즈 바를 배경해 막이 오른 이 연극이 제시하는 답 없는 질문은 이렇다. 


죽음만이 완전한 종말인가?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했던 건, 과연 누구를 위한 레퀴엠인가였다. 이 작품엔 많은 죽음이 있다. 인자한 스코틀랜드의 왕 던컨, 맥베스와 함께 예언의 주인공이었던 뱅쿠오, 비참하게 버림받은 애나벨(원작 : 맥더프 부인)과 캘런. 그리고 올리비아(원작 : 맥베스 부인)와 맥베스.




Lacrimosa dies illa 눈물의 그 날이 오면
Qua resurget ex favilla 티끌로부터 부활하여
Judicandus homo reus 죄인은 심판을 받으리라
Huic ergo parce, Deus 그러니 그를 어여삐 여기소서
Pie Jesu Domine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Dona eis requiem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Requiem in D minor, K.626 - Lacrimosa> 중에서


라크리모사, 눈물의 날. 그 노래의 음이 극 전반을 감싼 안개처럼 떠돈다.

내가 찾은 이 레퀴엠의 수신자는 맥베스의 '잠'이다. 이 비극이 이어지는 동안 가장 눈물이 사무쳤던 날은, 던컨을 죽인 맥베스가 "잠을 죽여 버렸다"는 목소리를 들은 바로 그 날이었다.






마지막에 맥더프는 맥베스를 죽이지 않는다. 살아서 고통을 느끼라며, 맥베스의 비극을 끝낼 기회를 빼앗는다.

숨이 끊어져야만 죽음이 아니라는 걸, 셰익스피어는 자주 '잠'과 '불면'을 통해 알려준다.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죽음만도 못한 광적인 삶의 면모를 보여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인간성의 종말은 단순히 양심을 버리고 욕망만을 따를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잠을 잃었을 때 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살면서 삶을 잃었을 때, "하루하루 삶의 죽음, 중노동을 씻는 목욕,/상한 맘의 진정제,/대자연의 일품요리,/이 삶의 향연에서 주식"을 잃었을 때 인간성은 종말을 맞는 것이다.


내일과 또 내일이
이렇게 쩨쩨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
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
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
백치의 이야기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하지만 감상 이후는 결국 생각하기에 따름이다. 움직이는 그림자 혹은 무대 위를 활개치다 소식 없어진 배우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면, 삶은 허무한 것인가. 아니면 허무한 것임에도 움직이고 활개치기에 애틋한 귀감인 것인가.

고전이 뜸해지지 않게 찾아 읽는 건 귀소 본능 같은 것이다. 고전은 사유의 가지를 내 안으로 뻗게 하고, 동시에 그만큼 밖으로도 뻗게 한다. 우리 존재가 사유하는 한 고전은 다시 읽히고 새롭게 읽힐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울창해질 것이다. 물론 어느 방향으로 울창해질 것인가는 셰익스피어도, 운명의 세 마녀도 예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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