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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프피 Apr 06. 2023

노스탤지어의 정물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전시①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_그 너머>

회화는 일종의 구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지만, 참다운 회화는 사랑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현대에 있어서 인간의 유일한 자유이며 구제인 것이 아닐 수 없다.

- 원계홍, 작가노트에서 발췌




경복궁역, 세종문화회관 뒤 걷고 걷다보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주변이 조용해졌음을 알 수 있다. 광화문 광장을 채운 야외 박람회와 사람들, 동화면세점 앞 지치지도 않고 앰프를 울리는 태극기부대의 시위 소음이 멀어진 곳. 그 어귀에 성곡미술관이 있다.





어귀. 그 말이 작품의 일부처럼 어울리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운명처럼 화필을 쥐고 도심 구석진 곳을 누볐던 화가 원계홍의 탄생 100주년 기념전.

살며 겪는 숱한 봄과의 조우 중 어느 해에 마주친 화가는, 정물을 그리고 골목의 풍경을 그리다 이윽고 스스로 풍경 속 노스탤지어가 되고야 말았음을 알았다.


원계홍의 작품들, 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골목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에게 <노스탤지어의 정물화>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싶다. 지난 시절, 고향에의 혹은 고향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향수'라는 무향을 캔버스에 담은 것이 화가의 가장 큰 예술적 업적이라면 업적이겠다.





특히 위 그림에서 크게 느꼈는데, 내가 나고 자란 동네를 떠나오기 전까지 살았던 '마지막 우리 집' 대문과 똑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나만의 심정일까. 낙후도, 발달도 아닌 어중간함에서 나이 들어간 고향을 알고 있는 누군가는 분명 나 말고도 있을 것이다.




그의 전 작품에 스며들어 있는 회색조와 머뭇거리는 듯한 붓 자국들은 아직 무엇인가 더 그려야 할지 아니면 그만 멈추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미완성인 양 캔버스 전체를 배회한다.

이수균(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고향을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못하고, 아예 지우지도 사무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기억을 맴도는 나의 심정으로 화가를 이해한다.​




어떤 그림은 정면보다 약간 비스듬한 곳에서 볼 때 눈길이 더 가는데, 위의 작품이 그랬다.





이 그림들의 배치는 어쩐지, 정말 이 골목에서 모퉁이를 돌면 저 골목을 보이는 듯한 실제감을 주었다. 매일 새벽이면 화구를 챙기고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는 화가. 그의 날 이른 걸음을 따라 걷는 것처럼.​



회화의 완성은 액자까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의 작품을 안고 있는 액자들의 색과 재질과 낡은 정도에 따라 느낌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니까 이름은 그리움, 외로움, 쓸쓸함이어도 다 같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풍경 못지 않게 많이 남긴 정물화를 보다가 궁금해진 건, 피사체를 중앙에 두지 않고 그린 까닭이다. 마치 어떤 그림은 중앙과 가까운 꽃 한 송이만 초점이 잡혀있고 다른 꽃송이들은 포커스가 나간 듯 흐릿하기까지 하다. 사진처럼.

원계홍은 57세에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툭, 툭. 캔버스를 두드렸을 그의 화필을 쥔 손에 비해 그의 심장은 그리 강하지 못했나보다. 그가 남긴 노스탤지어에서 덧없음, 하릴없음을 느꼈듯 그의 넉넉히 길지 못했던 인생에서도 느낀다.


이 우주에서 사라진 예술가의 작품을 만난다는 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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