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일, 음력 3월 12일. 나의 아빠가 세상을 떠난지 11년 되는 날이다.
중학생 때 독감을 앓았다. 어지러워 내내 교실 책상에 엎어져있던 나를 데리러 온 건 시티100을 끌고 온 아빠였다. 아빠의 시티100. 도배사였던 아빠의 도구들을 싣고 달리던 오토바이.
고향 동네 유일한 병원이 있던 삼거리까지 아빠의 시티100을 타고 달렸다. 눈을 뜨고 있자니 감기 기운에 어지럽고 눈을 감자니 느린 속도에도 겁이 나던 그때, 오한과 근육통 탓에 바람이 스쳐도 아리던 살갗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바스락한 감촉이다. 기대고있던 넓고 마른 아빠의 등, 남색 바람막이의 차갑고 건조한 감촉.
아빠는 나이 먹길 멈추고 나는 나이 먹길 거듭하고 기억은 바쁘게 흐려져간다. 근데 그 느낌만은 잔병을 치를 때마다 선명해진다.
내 아빠는 믿음직스러운 가장이 아니었다. 착한 심성은 흥부였으나 그보단 놀부와 닮은 게으름이 더 컸기에, 든든하고 멋져 닮고픈 아버지의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말수도 적어 가족과 살가운 대화가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 아빠가 자신의 삼우재 날, 내 억지스러운 낮잠 꿈에 찾아와 했던 말은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목 막힌 목소리로 잘 살아, 하고 현관문을 나가던 아빠의 뒷모습. 꿈 이야길 하는 내게 이모가 말해주길 원래 떠나고나면 며칠 내로 꿈에 찾아와 마지막 말을 남기는 법이란다. 말 없이 떠나야 했던 사람과, 말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을 가엾게 여긴 신이 주는 마지막 기회같은 걸까.
믿음직스럽지도, 든든하지도 않았던 아빠. 노는 걸 좋아해 놀부라 불리던 아빠. 아픈 딸을 데리러 일하다 말고 학교로 달려왔던 아빠. 아주아주 가기 전 마지막 기회를, 앞으로 자신 없이 살 날이 더 많아질 막내딸에게 쓴 아빠. 이 모두가 내 아빠다. 이 세상에 있으나 없으나 내 세상엔 유일한 나의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