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일으키는 법
벌써 두 번째 점검을 해야 할 때가 왔다. 2월 20일에 올린 글 <중요한 건 다시 일어나겠다는 마음>에서는 2월 2일에서 2월 16일 간의 생활 기록을 바탕으로 문제점과 잘한 점을 분석하고 새로운 목표를 수립했다.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1. 7~9시 사이로 저녁 식사 시간을 당긴다.
2. 잠들기 전에 독서를 하면서 오전 11시에 기상해서 오전 3시에 잠든다.
3. 생산적 활동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한다.
지난 글을 작성한 시점이 2월 20일이었으므로 2월 20일에서 2월 28일까지의 기록을 확인해보았다. 이제부터 이를 바탕으로 1차 보고에서 세운 목표 3가지를 잘 이행하였는지 분석해도록 하겠다.
대체로 잘 지켰다. 9일간 9시 이후로 저녁 식사를 한 날은 딱 하루, 2월 25일 뿐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은 이미 어느 정도 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을 조정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아쉽게도 이건 잘 지키지 못했다. 1차 보고에서 취침 시간이 너무 늦고 불규칙하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자기 전에 핸드폰 대신 독서를 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단 하루만에 실패했다. 2월 20일에 목표를 세우고 바로 다음날인 2월 21일에 계획대로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 1시간 동안 독서를 했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고 결국 5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이미 수면 습관이 야행성으로 단단히 굳어져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은 늦긴 하지만 잠드는 시간 자체는 지난번보다 일정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ADHD 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야행성 생활 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수면위상지연장애(Delayed Sleep Phase Disorder)'라고 하는데,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s)이 일반인의 일주기 리듬 또는 사회적 규범에 비해 지연되는 장애를 뜻한다. 나 또한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아침에 잠들어 저녁에 일어나는 일이 허다하다. 게다가 일종의 과수면증이 있어 하루에 13시간 이상을 잘 때도 있다. 그나마 ADHD 약물을 복용한 이후로 낮잠이 줄어 수면 시간을 조절하는 게 조금 쉬워졌다. 실제로 지난 학기에는 나름 괜찮은 수면 패턴을 유지했다. '수업'이라는 '강제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늘은 3월 1일, 즉 개강 하루 전날이다. 내일부터 나의 생활은 수업 일정에 맞춰 강제로 교정될 예정이다. 2차 보고일을 오늘로 정한 이유도 그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기 위해. 비록 이번에는 수면 습관을 교정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제부터는 교정하기 싫어도 교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너무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지키긴 지켰는데 좀 애매하다. 1차 보고에서 브런치 연재 작업, 독서 등의 생산적 활동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하기로 결정했는데, 타임 트래커 기록을 보면 독서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16분, 브런치 연재 작업은 12분이다. 둘을 합하면 하루 평균 4시간 28분. 대성공인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지난 9일 동안 내가 읽었던 것은 일반 도서가 아니라 웹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척 재밌었다. 실제로 웹소설을 읽기 시작한 2월 22일을 기점으로 독서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웹소설을 그닥 즐겨 읽지 않는다. 사실 독서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아니, 즐기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글을 읽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를 읽을 때마다 잡생각을 2~3개씩 걷어내야 한다. 정확하게 측정하긴 어렵지만 내 독서 속도는 일반인에 비해 5~6배 정도 뒤쳐지는 것 같다. 이건 거의 저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고, 10년 넘게 소설을 쓰고 있으며, 진로 또한 문학 내지 문화 콘텐츠 쪽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못 읽는 글쟁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세상에 또 있을까.
문학인을 꿈꾸면서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내 콤플렉스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작년 여름부터 ADHD 약물을 복용하면서 독서 속도가 살짝 늘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텍스트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기로 했고, 이번 프로젝트에 '독서 꾸준히 하기'가 포함된 것이 그 일환이다. 하지만 독서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그 '부담'을 덜기 위해 시작한 것이 웹소설이다. 재밌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난이도를 높여 나가자는 생각인데, '웹소설을 읽는 게 과연 생산적인 활동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마음이 썩 편하진 않다.
하지만 내게는 생산적인 활동이 맞긴 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국문과에 재학 중이고 관련 분야로의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출판사, 웹소설 플랫폼, 콘텐츠 기획,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하게 고민 중이다. 나는 글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지만 동시에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국문과에 진학하지도, 이렇게 브런치에서 연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좀 더 많이 하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까지 2월 20일에서 28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간의 진행 상황을 점검해보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내일부터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생활 패턴이 많이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프로젝트의 방향 또한 대폭 수정하게 될 것이다. 아직 개강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정하기는 어렵겠지만, 먼저 '지키고 싶은 것들' 항목 중 '산책하기'는 수업이 없는 주말에만 하기로 했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엄청난 경사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강의실과 집을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과 금요일에 있는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고려하면 너무 피곤해질 것 같아 산책은 외출할 일이 없는 주말에만 한정하기로 했다. 그 외의 추가 목표는 일단 '수업과 과제 열심히 하기' 정도로 정해두고 차차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눈 깜짝할 새에 2월이 지나가버려 아쉬운 마음이 크다. 원래는 좀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겠다는 마음'이다. 이제부터는 학교의 스케줄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강제력을 통해 삶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즉,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2월은 워밍업의 달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