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르바이트 경험기
학생비자로 프랑스에 도착해서 가장 큰 걱정은 내가 가진 돈으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였다. 최대한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빨리 일을 구하고 싶었다. 돈을 벌어보자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던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일을 하면서 언어 실력을 향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낭트에서 FLE라는 어학 기관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매일 외국인 친구들과 똑같은 단어만 사용하는 대화는 스피킹 실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에 더 활력이 더해지길 바랬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마음을 먹고 시내에 있는 카페에 이력서를 넣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아날로그식(?) 방법이 잘 먹히는데 아날로그식 방법이란 예를 들어 이력서를 직접 써서 매장에 갔다 내는 걸 말한다. 한국에선 알바몬 같은 여러 구인 사이트를 이용해서 일을 구하는 방법이 흔한데, 프랑스는 CV(이력서)와 Lettre de motivation (지원 동기서)를 직접 가서 제출하는 방법이다. 그때 당시 불어 실력은 정말 꽝이었지만 한국에서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이 조금 있어서 웬만한 음료는 다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에 3군데 카페에 이력서를 지원했고 결국 3주 뒤 한 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며 연락을 받았다. 연락을 받고 사장님을 만나러 가게 되었고 사장님은 바로 일을 시작하기를 바랐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 학생 체류증 갱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라 바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체류증!! 유학생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체류증때문에 발목 잡혀 무언가를 못했거나 벌벌 떨며 체류증 갱신을 기다렸던 그 나날들을 말이다. 프랑스에선 유학생들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데 단 학생 비자 체류증 카드가 꼭 있어야 한다. 내가 일 했던 카페는 꽤 큰 카페였고 프랑스에서 행정처리 (모든 서류들)는 항상 중요했다. 사장님은 꼭 그 카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3달째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 체류증 카드가 없어서 일을 시작하지 못하다니…
다행스럽게도 3일쯤 뒤에 바로 카드가 나와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불어를 못하니 당연히 음료를 제조하는 걸 시킬 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나는 Caisse (계산대)에서 주문을 받았다. 손님들이 하는 말도 잘 모르겠고 음료 이름은 나름 다 외운다고 외웠는데 외우면 뭘 하나 듣기가 안돼서 이해가 안 되는데, 첫날 일하고 그만둬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그래도 한 달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이력서 동기서도 쓰고 어떻게 구한 일인데 한 달도 못 버틸 수는 없다. 한 달만 해보고 싫으면 그때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계속 일을 했다. 일주일쯤 되니 손님들이 하는 주문이 들렸고, 한 달쯤 됐을 때는 어느 정도 동료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일하면서 초반에 프랑스어를 잘 못해 겪은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한 번은 동료가 serpillière(대걸레)를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대걸레가 불어로 뭔지 몰랐던 난 해맑게 웃으며 동료에게 serviette (냅킨)을 가져다줬다. 그날은 손님이 많아 바쁜 토요일 중 하루였는데 그 동료는 한참을 웃더니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serpillière가 뭔지 가르쳐줬다. 변명이 아니라 진짜 학교에선 그런 건 안 배웠다고!
카페에선 일주일에 20시간이 좀 안되게 일을 했는데, 방학 때는 더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 월급도 꽤 쏠쏠했다. 그리고 나도 그 유명한 프랑스의 5주 유급 휴가를 누릴 수 있었다. 원래는 카페를 다닌 지 1년 미만이라 내가 원할 때 휴가를 쓸 수는 없었는데, 사장님이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친구들과 맞춰서 프랑스에서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카페에서 일할 땐 일주일마다 시간표가 바뀌었는데, 어쩔 땐 시간이 붕 떠서 2,3시간이 남을 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그 쉬는 시간들이 오히려 좋았다. 그 시간에 카페에 남아서 불어를 공부를 하거나 잠깐 쉬면서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니면서 일하는 게 피곤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보낸 1년 6개월간의 시간은 참 값진 시간들이었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먹고 싶은걸 먹고 생활도 하고 가끔 여행도 갈 정도의 여유는 되는 돈이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카페에 일 하면서 어느 정도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고, 너무 좋은 사장님과 동료들을 만났다. 일하다가도 내가 모르는 부분은 항상 고쳐주고 쉬는 시간에 같이 밥먹겄나 커피 마실 땐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했다. 가끔 같이 일 끝나고 마시는 술 한잔으로 기분을 풀기도 했고, 프랑스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
운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직접 실행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 유학한다면 아니 해외에서 생활하는 시간 있는 유학생이라면 잠깐이라도 일해보는걸 강력히 추천한다. 제일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이력서와 동기서만 있으면 당신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