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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tine in island Aug 18. 2023

짜장면과 짬뽕_화교의 음식을 넘어 국민음식으로

학술논문을 주로 쓰는 저는 사실 글이나 방송에서 순수하게 제 개인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일이 익숙치가 않습니다. 학술논문에서는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론을 만들고, 그들의 주장을 인용해서만 저자의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번 칼럼은 이전 칼럼들과는 다르게 다소 ‘도발적’일지 모르는 제 견해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음식을 영양이나 건강과 연관 짓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뭐라구요?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던데요?” 라고 반문하시는 시청자분들의 목소리가 마치 들리는 듯합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좋은 먹거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더 많이 알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저도 방송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만 음식을 먹는 행위가 맛의 추구나 허기의 해결이 아닌 오로지 영양과 건강, 장수를 위해 먹는 것처럼 왜곡되는 것이 종종 불편합니다.

 영양학이라는 학문은 매우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회문화적 요소가 배재된 절대적 진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과학적 분석틀로 무장한 100년 역사의 근대 영양학의 대표적인 흐름을 살펴보면서 제 주장에 동의하실 수 있는지 판단해보시면 좋겠어요. 1800년대 인체영양학에서는 식품은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간이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이후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칼로리’ 라는 열량 측정 단위가 등장하고 이를 통해 식품의 가치는 수치로 표시되기 시작합니다. 즉, ‘칼로리’가 높으면 좋은 음식이었던 것이죠. 당시 영양학자들은 ‘칼로리’라는 개념을 활용해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 아니고, 식품의 가격이 그 영양 품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이러한 학계의 주장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노동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식사법을 국민들에게 계몽하고자 했던 개혁가들의 정책에 이론적 토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무미무취의, 이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식품성분이 새로이 발견되게 됩니다. 이 성분이 당시의 다양한 결핍성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이상 ‘칼로리’ 만으로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 유지에 충분하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되죠. 그 성분이 바로 ‘비타민’ 입니다. ‘비타민’은 칼로리 만능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그 당시 소비자들에게 확립된 식품의 가치판단 기준을 흔들어 놓았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비타민과 미네랄이 발견되면서 식품회사들은 자사의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한 방편으로 이 주장을 적극 도입했어요. 그 이후에는 ‘비만’과 ‘만성질환’으로 영양학의 관심사가 이동하면서 특정 식품은 피하거나 적게 먹어야 한다는 부정적 영양학이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비만이 대다수의 성인 만성질환의 유발인자로 인식되면서 보험업계 및 식품산업계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조금 많이 축약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일련의 변화과정을 보면 영양학과 올바른 식사법에 대한 캠페인도 역사의 산물 중 하나이며 잠정적인 결론일 뿐이라는 것에 일견 동의하실 수 있을 거에요.

  한국사회에서 특정 음식의 영양과 건강에 대한 담론을 가정의 식탁으로까지 확산시킨 또 다른 공로자는 한의학입니다. 좋은 전통이라는 인식이 박힌 한의약의 음식담론은 소비자들의 영양과 건강에 대한 견해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가끔씩 과거의 음식이 건강에 이로웠다는 막연한 향수까지 자아내기도 하죠. 우리는 자주 한식을 대표하는 특징이자 미덕을 ‘약식동원’ 사상에서 찾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한국의 궁중음식은 통치자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약식동원’과 ‘음양오행’을 결합시킨 식사를 통해 예방의학을 실천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그랬을까요? 권력이란 자원을 배분하고 그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자격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을 가진 통치자에게 귀하고 좋은 음식이 독점되는 현상은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어느 문화권에서나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죠. 

 통치자들은 음식을 통해서 권력을 향유했고, 중세시대에는 ‘토지’는 곧 ‘음식’을 상징했어요. 그러다가 그들은 음식에 ‘약’이라는 새로운 가치까지 부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국가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 최고의 권력자들은 음식을 통해 ‘불로장생’과 ‘강장강정’을 추구했어요. 중국 사대부들의 중요한 자격조건이 음식에 관한 지식과 기술 습득이기까지 했죠. 비단 중국만이 아닙니다. 중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조리법을 처방전이라고 불렀고, 요리사가 아닌 건강 전문가들이 이들을 작성을 했다고 하죠. 15세기 무렵 출간된 유럽의 요리책들은 모두 식습관과 약에 대한 내용에 음식이 보강된 형태였어요. 

노스트라다무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릴까? 예언가로 익히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가 16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조리 비법서의 저자였다는 거예요. 예언가로 명성을 얻기 전 그의 직업은 의사였는데, 예언서를 쓰기 전에는 주로 비법서를 저술했고 그의 책에는 잼과 젤리에 관한 레시피가 다수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프랑스 요리의 근대화는 중세의 조리법과 약효 사이의 연결고리를 잘라낸 결정적 전환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주장은 현대 프랑스 요리가 미각과 예술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걸 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서두가 긴 것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 듯해요. 다소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을 펼치면서까지 말이죠. 바로 이번 칼럼의 주제인 ‘국민음식’의 의미와 존재감을 좀더 부각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오해를 하실 수 있어 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음식과 인체건강 간의 상관성을 결코 의심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이 단순히 영양소들의 합이라고 생각지도 않아요. 음식에는 영양적 가치 외에도 전통, 정서적 기능, 감각적 경험 같은 다양한 가치들이 내재되어 있고 이것들이 다른 가치에 의해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한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모든 시간 속에서 맛은 그리움으로 변해서
사람들의 뼈와 살과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있다고 했습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음식을
우리는 ‘국민음식’이라고 부르죠.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한국인의 ‘국민음식’은 무엇인가요? 

 오늘은 작정하고 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제가 경험했던 ‘국민음식’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해 드릴께요. 90년대 말 저는 미국 동부 보스턴에서 유학을 했어요. 유난히 긴 보스턴의 겨울이 한동안 저를 심한 우울감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 어떤 걸로도 저의 우울과 향수를 달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일주일에 한번 씩 장을 보던 한국 식료품점 앞에 한국식 중국집이 개업을 한 거에요. 그 추웠던 겨울 보스턴 한복판에서 한국식 중국집을 발견했던 기쁨과 그곳에서 먹은 짬뽕의 맛은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물 한 숟갈에 눈 녹듯 사라지던 헛헛함, 매콤한 향에 금방 훈훈해지던 서늘했던 마음 한 구석. 짬뽕을 먹는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마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죠. 한 그릇의 음식이 위로와 위안이 된다는 걸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어요.

 그 당시 보스턴에도 갈비, 불고기, 비빔밥, 냉면 같은 한국음식을 팔던 한식당이 비싸긴 했지만 존재했고, 그 음식들을 먹을 수 없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한식 대표메뉴이긴 했지만 제 정서를 위로해 줄 ‘국민음식’은 아니었던 거죠. 자장면과 짬뽕을 한식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식 세계화 당시부터 의견이 분분했지만 자장면과 짬뽕이 한국인들에게 ‘국민음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물가중점관리 대상이기도 했고, 요즘도 물가를 판단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이라는 뜻이니까요.

보스턴 북경반점. 출처_엠지의 일상이 여행, 여행이 일상

 중식당에 방문해 자리에 앉으면 바로 테이블에 생양파와 춘장, 그리고 단무지가 제공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나요? 단무지! 다꾸앙은 일본음식이잖아요. 왜 한국의 중식당에서는 일본음식인 단무지가 제공될까요? 제가 이번 칼럼에서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 국민음식인 자장면과 짬뽕의 역사에 대한 비밀이 바로 이 대목에 숨겨져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자장면과 짬뽕은 그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수많은 중국음식 중 하나가 아닌 한국과 일본 화교의 팍팍했던 이주역사가 담긴 음식입니다. 

 혹시 자장면의 원적은 중국 산둥성, 본적은 인천 차이나타운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어떤 책에서 자장면을 소개하면서 사용한 표현입니다.
한국 자장면의 원조는 1800년대 말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한국 풍토에 적응하면서 탄생한 한국 화교의 음식입니다. 

화교는 16세기 명나라 때 무역의 부흥과 함께 등장해 18세기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무역업과 각종 분야의 노동자로 활동한 중국인들을 지칭하죠. 이들은 이주지에서 자신들의 근거지인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는데 인천 제물포의 차이나타운은 19세기 말 중국 산둥지방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식당이 필요했고 이들을 위한 작은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이 식당들에서 판매하는 메뉴들 중 가장 저렴한 메뉴가 바로 ‘자장면(자작멘)’이었습니다. 원래 중식 자작멘(자장면)은 3년 이상 발효된 첨면장을 차가운 면에 비벼먹는 형태로 국물은 없고 짠 맛이 특징이에요. 한국에 들어온 자장면은 한국인의 기호와 돼지고기 파동과 같은 한국 경제상황과 맞물려 변화를 거듭했어요. 느끼한 맛을 줄이기 위해 단맛을 더한 춘장이 개발되고, 국물음식이 익숙한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국물이 있는 형식으로, 돼지고기 양을 줄이고 감자나 양파를 더하는 등 차별화된 메뉴로 현지화 되었죠.

 반면, 짬뽕의 발상지는 일본의 나가사키입니다. 나가사끼 짬뽕과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한번씩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이죠.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양과 교류를 할 수 있었던 항구도시였어요. 포르투칼 및 스페인 무역상과 카톨릭 예수회 사제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이후 그들의 음식이 일본식으로 변형돼 ‘카스테라’와 ‘덴푸라 같은 메뉴를 탄생시켰어요.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 명나라도 일본과의 무역에 가세를 하게 되고, 이 지역에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죠. 이곳의 한 중식당에서 만든 나가사키 짬뽕은 본토에서 온 중국인 유학생 및 현지 일본인들에게까지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요. 고기, 해물과 야채 등 10가지가 넘는 재료를 낫토에 볶은 다음 돼지 혹은 닭 육수를 붓고 면을 넣어 끓인 나가사끼 짬뽕의 일본식 표현은 ’잔폰‘이에요. 잔폰은 ’여러가지 다양한 것을 섞은‘이라는 뜻의 일본어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와서 뜻은 동일하고 발음은 경음화된 ’짬뽕‘이 되었던 거죠. 

짬뽕은 나가사키 화교의 음식이 한국으로 수출된 메뉴인 거에요.
실제로 한국 중식당과 나가사키 중식당의 공통점은
자장면, 짬뽕, 그리고 단무지라고 합니다.
한국 화교가 만든 자장멘이 나사키로,
나가사키 화교가 만든 짬뽕은 한국으로 전파된 것이죠. 

 1960년대가 되자 한국 화교들은 대거 도시로 이주해 중국음식점을 개업했어요. 이들의 대표메뉴는 자장면, 짬뽕, 우동이었고, 이때부터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또다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던 대다수의 화교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 자리는 한국인들이 차지하죠. 이들은 배달서비스를 앞세워 아파트 단지마다 개업을 하면서 시장을 확대해 나갑니다.

 자장면과 짬뽕은
과거에는 졸업식과 입학식 같은 특별한 날에 먹는 외식 메뉴의 대명사로,
현재는 이삿날에 먹는 별식으로
한국인 삶의 중요한 대목에 함께 해온 음식이에요.
시대와 취향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입맛도 변화하지만
자장면과 짬뽕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런 음식은 먹는 이들에게 생존의 수단만이 아니라
위로, 소속감, 동질감을 제공하며 시공간을 초월해 장소와 경험을 연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추억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제는 자장면과 짬뽕을 먹을 때 이들이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의 이색적인 문화를 융합해 현지인에게 새롭지만 보다 보편적인 음식으로 탄생된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점을 기억해보셨으면 합니다.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이범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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