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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tine in island Dec 16. 2021

음식 경영학_디저트는 판타지가 필요하다.

My point of view_푸드비즈 #2. 식문화의 세계화

디저트의 위상은 우리의 식문화에 있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거 같지 않나요?

서양식 코스요리에서는 디저트(dessert)가 절대 빠지지 않죠. 디저트가 실망스러우면 제 아무리 코스의 구성이나 각 메뉴의 맛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왠지 김이 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에요.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잖아요. 배가 아무리 불러도 디저트 먹을 배는 따로 있다고요.

디저트의 유래는 정확히 정의된 것은 없어요. 오늘날의 디저트와 같은 개념이 생겨난 것은 고대 그리스 시기에 당대의 철학자와 시인들 등이 모이는 토론의 장에서 식후에 물을 탄 와인과 치즈나 살구, 그리고 말린 무화과 등을 먹던 것이 현대의 디저트와 같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요.

<보티첼리, 나스타지오 데글리오네스티의 이야기>

또 다른 주장은 중세에 이르러서는 식사 후에 소화를 도와 주는 생강, 콜리앙다, 아니스 등의 허브에 설탕을 첨가해 발효시킨 음료를 입가심으로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식후에 디저트를 먹는 습관의 직접적인 계기라고도 해요.

오늘날 우리가 먹고있는 디저트 '메뉴'는 산업혁명 이후 19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개발되고 정착된 것들이 많아요. 이 때 디저트는 애피타이저와 마찬가지로 앙트레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계절감을 나타내야 하며,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모든 요소가 균형과 조화가 맞아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게 되었죠. 디저트가 코스의 어느 지점에서 제공되어야 식사를 기분좋게 즐겼다고 느낄까 하는 많은 이들의 연구 끝에 맨 마지막에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디저트를 먹는 순서와 대표적인 메뉴들이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일까요? 디저트는 '식탁을 치우다'라는 뜻의 'desservir'에서 따온 말이라고 해요. 서양 음식은 대부분이 지방을 바탕으로 짠맛과 신맛이 주를 이루어요. 그래서 단맛으로 식사의 마무리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빵과 과자가 있는 정물, 게오르크 플레겔>

반면에 반찬과 같은 식사메뉴도 단맛을 띄는 한식에서 디저트는 서양의 디저트와는 다른 개념일 수 밖에 없어요. 한식에도 달달한 당분이 많은 유과나 약과,  새콤하고 신맛이 도는 앵두나 살구, 오미자 등으로 만든 과편이 있지만 그것은 식후에 먹는 디저트라기 보다 간식이나 별식과 같은 개념이었어요. 또는 식사 메뉴와 같이 상에 올리는 방식으로 제공되었어요.


아주 가끔 디저트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의 식문화가 디저트가 많이 발달된 식문화에 비해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견해를 마주할 때가 있는데 동의할 수 없는 시각이에요. 식문화의 발달이라면 어디가도 뒤지지 않는 중국 식문화에서도 디저트 메뉴가 그리 눈에 띄거나 다양하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디저트는 다양한 식문화 속에서 식사 후에 본 식사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후식으로, 식사와 식사 사이에 출출함을 달래는 간식으로, 차나 커피에 곁들이는 다과로 다양한 기능을 소화하죠. 그러나 디저트의 기능이 무엇이든 간에 디저트는 일정 수준 이상의 당도를 가져야 하고, 반드시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가 더해져야 '진짜'가 된다고 생각해요. 건강을 생각해서 덜 달게 만들었다는 디저트는 필자에게는 맛없는 음식일 뿐이에요. 건강을 생각한다면 디저트의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절제해야 하고 디저트를 포함한 모든 음식은 정확한 맛을 내야 하죠.

 

메뉴를 개발할 때 어떤 메뉴는 한 접시를 혹은 한 그릇을 다 먹었을 때 느껴지는 맛을 기준으로 삼아요. 대개의 경우 식사 메뉴가 그러해요. 첫 숟갈을 떴을 때는 그 맛의 풍부함이 좋았지만 다 먹었을 때는 이루말할 수 없이 느끼할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나 디저트는 그 자체로 먹기보다는 차나 커피를 곁들이고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 보다는 쾌락을 위해 먹는 것이니만큼 함께 제공되는 음료의 맛과 향에 져서도 안되고 첫 스푼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정확히 표현해줘야 하죠.

 

거기에 더해 소비자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디저트는 '판타지' 즉, '스토리 텔링' 을 필요조건으로 한다는 거에요. 그게 빠져있다면 '디저트'는 그저 달기만 한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에 지나지 않고 한철 유행에 따라 소모될 뿐인 거죠. 한 스푼을 떠 먹었을 때 연상되는 판타지가 없다면 오늘의 균형잡힌 식단에 도움을 주지 않은 이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길이 없어지잖아요?


디저트를 생각할 때면 누구나 어릴 때 읽었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나 찰리의 초콜릿 공장 같은 스토리를 떠올리죠. 그래서 대부분의 서양 디저트는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색감과 공예품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우리의 디저트에 대한 기대에 부합하죠. 그런 디저트 브랜드들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매그놀리아', '피에르 에르메', '도미니크 앙젤 베이커리' 같은 곳을 들 수 있을 거 같아요. 맛과 향, 형태, 그리고 색감까지 제가 가진 디저트에 대한 환상을 모두 해결해주죠.

<도미니크 앙젤의 크로플, 매그놀리아의 컵케이크, 피에르 에르메의 마카롱>

그런데 이런 종류의 알록달록하고 달달한 이야기 만이 판타지일까요? 디저트가 들려주는 또 다른 판타지는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라고 생각해요. 그런 종류의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가 필자에게는 바로 "태극당" 이에요. 다른 이유로 근처에 들렸다가도 꼭 한번은 들려서 계획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사게 되는 곳, 부모님을 위해 "모나카" 박스를 주문하게 되는 곳이에요. 그 시절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우리 엄마 아빠도 좋아했던 디저트라서겠죠. 어린시절 생일을 떠올리게 하는 핑크색 초록색 버터크림 장미로 장식된 버터크림 케이크도 추억이 가득한 메뉴에요. 늘 버터크림을 걷어내고 먹어서 크림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운 맛이고요. 카스테라며 고로케며, 야채 사라다 빵이며 부모님과 즐거웠던 유년기의 추억이 함께한 것들이에요. 1946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베이커리인 태극당이 MZ세대에게는 '뉴트로의 성지'라고 해요. 필자는 이곳에서 K-디저트를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해 전 뉴욕 맨하탄 F&B 씬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디저트 브랜드가 있었어요. 이상에서 언급한 유럽풍 파스텔톤의 디저트 제국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판타지를 가진 브랜드였죠. 그곳은 '크리스티나 토시(Christina Tosi)'의 '밀크바(Milk Bar)'입니다. 이 브랜드는 뉴요커들의 디저트 먹는 방식을 바꿔놓았다는 평가까지 받는 곳으로 열광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대중문화 현상까지 선도했다고 회자되고 있죠. 이 곳에는 예술작품 같은 메뉴는 없어요.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줄 것 같은 홈스타일 베이킹을 기반으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아내면서 동시에 파괴하죠. 사용되는 재료도 어느 식료품점의 진열대에서나 볼 수 있는 대중적이고 흔한 것들이에요. 밀크바의 메뉴는 모두 전형적인 미국 디저트를 지향합니다. 다수의 미국 디저트 브랜드들이 프랑스 스타일을 흉내내기도 하고, 일본 스타일로 도망가기도 하지만 밀크바는 그러지 않았아요. 크리스티나 토시는 아메리칸 정크푸드를 새롭게 해석하고 스트리트 스낵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어요.

 

밀크바의 센세이셔널한 성공에는 '씨리얼 밀크(Cereal milk)' 라는 혁신적인 메뉴가 있었어요. 그녀는 어린시절을 함께한 '콘플레이크'의 익숙한 맛을 떠올리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디저트에 활용하기로 해요. 이 우유를 활용해 파나코타를 만들기도 하고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쿠키를 만들었어요. 그 밖에도 독창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메뉴가 많지만 필자가 주목한 메뉴는 'birthday cake(생일 케이크)' 이에요. 그녀는 프랑스 스타일의 기존 케이크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대체 왜 저렇게 프로스팅으로 케이크의 외부를 매끈하게 감싸지 못해 안달하는 걸까? 그 시간에 더 맛있는 케이크 시트와 필링 크림, 프로스팅에 정성을 다할 수는 없는 건지 고민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녀의 케이크는 마치 인형의 집 내부를 들여다 보고 싶은 동심을 담은 듯 프로스팅으로 케이크를 덮지 않아요. 그리고 미국식 어린이용 디저트에 늘 사용하는 색색가지의 스프링클을 케이크 시트와 가니쉬에 활용했죠.

<밀크바의 birthday cake와 cereal milk soft iceream>

필자는 자신의 디저트를 K-디저트로 만들고 싶은 쉐프들이라면 밀크바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 중 첫번째는 가장 미국다운 맛과 스타일로 승부를 봤다는 것이에요. 크리스티나 토시는 미국 최고의 요리학교 중 하나인 'FCI(French Culinary Institute)'를 졸업했어요. 프랑스 제과를 마스터한 페이스트리 쉐프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했고 미국 홈베이킹 스타일에서 그 답을 찾았죠. 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유년기를 추억하게 하는 이보다 더 친근한 판타지가 있을 수 있을까요? 마치 공작새처럼 자신들의 화려함을 뽐내는 디저트 제국에서 그녀의 이러한 시도는 그녀의 브랜드를 오히려 가장 힙(Hip)하게 보이게 합니다. 두번째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추구했다는 것이에요. 그녀는 지난 수세대 동안 계속 되어왔고 향후 수세대 동안 계속 될 수 있는 아이템을 선택했어요. 다수에게 오랜 시간동안 검증되고 선호되어 온 것이야 말로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메가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지금 핫한 것, 뉴욕이나 파리 혹은 도쿄에서 유행하는 것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죠. 그런 것들을 모방하려는 시도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식문화가 이만큼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전과 지금의 우리 것을 돌아보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죠. 지금 편의점에서 팔고있는 과자나 빙과류 중 다수는 필자가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시절에도 있었거나 그때 출시된 것들이 많아요. 거기에 K-디저트에 차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혹은 해답이 있을 거 같아요.


동화속 이야기나 어린시절의 추억도 우리에게 판타지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해왔던 판타지는 우주여행이 아닐까 해요. 화성을 테마로 '한번도 본 적 없는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겠노라는 야심찬 출사표를 던진 디저트 브랜드가 있어요. '뉴New, 디퍼런트Different, 케이크Cake'. 이 세 가지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었다는 브랜드 "누데이크"에요. 이 브랜드는 사실 런칭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었고 매장 오픈 직후에는 장안의 화제였죠. 기나긴 대기, 그리 친절하지 않은 안내, 이 바닥 사람도 기업도 아닌 패션 기업이 뛰어들었다는 점, 맛에 대한 호불호....이 브랜드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누데이크는 실험정신, 독창성 및 가격대와 같은 면에서 기존 국내 디저트들의 한계를 확장시키는데 일조하고 있고 그러한 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와 같은 측면에서 따끈따끈한 신생 브랜드인 "아틀리에 폰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고요. 가격이 현존하는 국내 디저트 중에서는 가장 비싸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2가지의 제품을 하루 20개만 한정 판매하고 무엇보다 퀄리티가 매우 우수하다는 점에서 누데이크와 함께 소비자들의 국내 디저트에 대한 가치 인식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되죠.

 

다시 뉴데이크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브랜드는 지금까지의 F&B 작법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요. 지금의 소비자는 내가 사는 물건이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이유도 이야기도 없는 제품은 사지 않아요. 기능성이 요구되는 그릇을 에르메스라는 럭셔리 패션하우스에서 사기도 하는 알 수 없는 집단이에요. 그러나 누데이크는 이런 소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들은 제품을 파는게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디저트를 만들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흔할까요? 처음 시작이 다른거죠. 이야기가 있는 디저트 카페가 그들의 목표였어요. 누구나 자신의 브랜드에 이야기를 담고 싶어하고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가 판타지일 때는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라 왠만한 선수가 아니라면 대들기도 쉽지 않아요.

 

그러나 세계관이 아무리 훌륭한다 한들 디저트가 맛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 브랜드의 기획자는 디저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요. 너무 달아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죠. 누데이크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빵은 하나를 다 먹을 수 있는데 케이크를 그럴 수 없다면 빵 같은 케이크를 만들자고요. 이 지점이 필자가 누데이크가 아직 성패를 함부로 재단하기 어려운 신생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K-디저트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드린 이유에요. 서양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먹고 자랐기 때문에 서양 디저트의 단맛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죠.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렇지가 않아요. 한국사람의 입맛에 맞춘 것, 한국 사람들의 스타일로 변형한 케이크, 그러니 이것을 K-디저트의 시도라고 해야겠죠.

<누데이크의 대표메뉴 피크 케이크>

누데이크의 시그니처인 "피크 케이크" 는 크로와상 시트에 말차 크림으로 필링을 했어요. 녹차는 서양 디저트를 한식화 하는 과정에서 일순위로 사용되는 클리셰 중 하나에요. 그리고 좀더 호기심 가는 비쥬얼을 만들기 위해 오징어 먹물도 사용했고요.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담백했죠. 서양 디저트에서는 고려하지 않는 맛의 기준이에요. ‘라바lava 케이크’라고 부르는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영감을 받아 3D 그래픽으로 케이크 화산이 폭발하는 영상을 만들어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죠. '맛'이라는 기본기가 탄탄했기에 '비쥬얼'의 파격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술도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죠. 필자는 이 브랜드가 어떤 의미로든 국내 디저트 역사에서 족적을 남기리라 예상해요.


이렇듯 소비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디저트 브랜드들은 모두 다양한 종류의 판타지를 기반으로 합니다. 요즘같이 모든 분야에서 노이즈가 많은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자기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성공에 이르는 첫 관문이에요.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선택될 기회 조차 없는 거니까요.(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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