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금 당직실의 벽시계는 새벽 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어요. 나는 열흘 전 비극적인 사고를 당한 한 여자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고, 또 한 여자의 아들이기도 한 젊은 남성의 무려 4번째 복부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길입니다. 이 수술은 그가 살아있는 한 아마도 계속 반복되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를 살리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그저 지옥보다 더 한 고통을 주고만 있는 건 아닐까요? 감정의 끄나풀들이 소용돌이처럼 나의 의학적 판단을 헤집으려 들 때면 Dr. 그레이, 나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처음 당신을 보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어요. 의대에 가겠다는 일념으로 엉덩이에 욕창이 생길 때까지 공부만 하던 때였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아주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용 독서대, 필통, 그리고 수십 권의 오답노트 표지까지... 그것들은 온통 당신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어요. 내과의사이신 아버지는 평생의 롤모델이 되어주셨지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칼을 휘두르는 외과의를 꿈꾸었기에 Dr. 그레이, 당신은 나의 또 다른 영웅이었습니다.
18년 전, 과장님이 인턴으로 병원에 첫 출근하던 날의 에피소드가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사실 전 거의 모든 에피의 대사를 줄줄 외우고 있죠. 너무 스토커 같나요?) 어둡던 수술방에 조명이 켜지고, 가슴 터질 듯한 열정과 기대에 부풀어 동료들과 그곳을 둘러보던 어린 외과의사. 그땐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할 운명이었는지 알지 못하셨겠죠. 끊임없이 이어진 이별과 아픔, 그리고 비극적인 가족사까지.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심지어 세 아이의 엄마라는 막중한 임무까지 완벽히 수행하면서, 끝내 하퍼 에이버리 상의 수상자 및 외과 과장이라는 최고의 위치에 도달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저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 순간마다 꺼내보곤 했습니다. 당신이 인턴, 전공의, 펠로우 시기를 우아하고 결단력 있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쭉 지켜보았고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의사를 꿈꾸던 꼬마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술복을 입고 밤을 지새우는 여자 외상외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과장님은 지난 18년 간 저의 꿈이자 멘토이자 우상이었을 뿐 아니라, 제가 가장 어둡고 힘들었던 순간에 어깨를 다독여준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시애틀의 그레이-슬론 메모리얼 병원을 떠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게 되었지요. 당신의 자녀를 위해 내린 그러한 결단에 저는 박수를 보냅니다. 안주하지 않는 삶의 모양, 그것이 당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니까요. 다시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통해 당신의 삶을 염탐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지만, 당신을 통해 배운 용기와 도전의 정신은 내 안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당신을 뛰어넘는 최고의 외상외과 의사이자 세상을 바꾸는 여성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Dr. 그레이, 나는 벌써 당신의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그립네요. 미스터리 환자의 병명을 알아챌 때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두요.
모든 존경과 감사를 담아
한국에 사는 당신의 성공한 덕후, Dr. 올리비아 올림
The wall clock in the on-call room reads 2:50 a.m. I've just finished a fourth laparotomy on a young man, a father to a girl, a husband to a woman, and a son to a woman, who was involved in a tragic accident ten days ago. These surgeries will probably have to continue as long as he lives. Am I saving his life, or am I just putting him through much pain? When the tides of emotion threaten to overtake my medical judgment, Dr. Grey, I think of you.
From the moment I started watching Grey's Anatomy in high school, I knew that there was something exceptional about you. While studying tirelessly to achieve my dream of med school, you constantly reminded me that I could overcome obstacles and become the person I aspired to be. My father, an internist, was and still is my lifelong role model, but you, Dr. Grey, were the hero I needed to fuel my passion for surgery.
I can still vividly recall the day you walked into the hospital as an intern 18 years ago. (I know almost every line of the episode by heart. Is that too much of a stalker?) The lights came on in the dark OR, and the young surgeon looked around the OR with her colleagues excitedly and eagerly. Little did she know what she was destined to endure... Your story of how you overcame tragedies, even the daunting task of being a mother of three, to become a Harper Avery Award winner and chief of surgery, was one I turned to whenever I wanted to make a reasonable compromise with reality. I watched you navigate your internship, residency, and fellowship years with grace and determination, and I have grown up with you. And finally, the kid who dreamed of becoming a doctor became a female trauma surgeon who lays awake at night in scrubs trying to save her patients. You have been not only my dream, mentor, and idol for the past 18 years, but also a colleague who has put a shoulder to cry on in my darkest and most twisted moments.
Now you're leaving Grey-Sloan Memorial Hospital in Seattle to begin the next chapter of your life, and I applaud you for making that decision for your children. So painful to know that I will never be able to spy on your life through Grey's Anatomy again. Still, the spirit of courage and challenge that I've learned from you will live on in me, and I will never stop striving to be the best trauma surgeon and female leader I can be. But Dr. Grey, I already miss your laugh and that mischievous look when you figured out your mystery patient's diagnosis.
With the deepest admiration and gratitude,
Dr. Olivia from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