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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상센터 이야기 Oct 30. 2022

여자 이국종이 될 수 없다면

나의 이야기

나의 외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셨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은 명절날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시던 모습이다. 연설의 주제는 매번 달랐지만, 주로는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6.25 참전과 목숨을 건 남쪽행까지 (본디 할아버지는 개성 분이시다). 당신 인생의 우여곡절만큼이나 자식 손주들에게 전하고픈 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문제는 연설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숟가락을 들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갈비찜이 더 이상 김을 피워내지 않고 차갑게 식어갈 때쯤에는 표창장 수여가 시작되었다. 색색깔의 형광펜으로 정성스레 꾸며진 상장의 수상 기회는 매년 손주들에게 골고루 돌아갔는데, 거기에 손자 손녀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물론 수상자 선정의 변 30분 추가는 덤이었지만). 상을 받은 착한 어린이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위대한 사람으로 자라야 함을 명심하라고 하셨다. 위대한 사람. 할아버지의 그 말은 내게 큰 울림이었다.


어른이 되어 더 이상 할아버지의 연설을 들을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된 이후에도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그 울림을 떠올리곤 했다. 이것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만드는 일인가?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이러한 자문은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과목을 선택할 때도, 또 전문의가 된 뒤 외상외과를 업으로 삼기로 했을 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이국종 교수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외과 레지던트 2년 차 말, 특별 강연에서였다. 이미 외상외과를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후였기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교수님, 저도 교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당시 나는 만삭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히어로에게 남기는 첫인상이 나약한 여성의 모습이기를 원치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2년 뒤 아주대 외상센터로 파견 근무까지 자원해 갔건만 결국 그날 이후로 그분을 영원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서 지는 것을 싫어하고 매사에 치열했던 나는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남자들과 승부를 벌이더라도 늘 승리는 나의 것이리라 자부했었다. 병원 생활을 시작하고 적어도 몇 년 간은 그 가설이 꽤나 잘 맞는 듯했다. 그러나 완벽한 줄 알았던 가설의 세계는 곧 기울기 시작했는데, 바로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였다. 어느새 동기들은 나 대신 당직을 더 많이 서고 있었고,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비상 상황에 자꾸만 남에게 부탁할 일들이 생겼다. 남에게 일을 미루는 것을 혐오했던 내게 이것은 몹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베이비 시터의 헌신적인 도움이 늘 있었지만, 결국 '엄마'라는 존재가 채워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대체재가 없었다. 나는 내가 이국종 교수님처럼 될 수 없음을 조기에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패배처럼 아리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는 나를 더 나은 의사로, 아니 더 나은 인류로 만들어주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이전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내 머리와 가슴이 미처 닿지 못했던 곳들까지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다. 울림은 더 큰 울림이 되고, 아이가 살아갈 이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616번 지구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지켜보는 이 없이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기계에 짓눌려 비명횡사해도 사업주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청소년, 노인, 취약 계층의 자살률이 솟구치지만 나라님들은 관심이 없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바퀴 두 개 달린 살인 도구들은 미래 모빌리티 사업이라는 세련된 말로 포장된다. 아동 학대, 데이트 폭력, 존속 살인은 지겹게도 여전히 뉴스의 단골 소재이다. 치료를 넘어 사람과 삶을 치유하는 토대를 닦는 일. 거기에 아주 작은 밀알만큼의 보탬이라도 얹을 수 있다면. 생명이 지니는 고귀함을 세상에 전파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치열하게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고작 세 살의 나이에 엄마의 당직 스케줄을 알기 위해 달력 읽는 법을 터득하게 해서 미안하다.

유치원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 다른 엄마들처럼 바로 나타날 수 없는 엄마인 것도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여자라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단 걸 삶으로서 네게 보여주고 싶어.

너는 내게 빛이고 생명이란다.




여자 이국종이 될 수 없다면, 그냥 설아엄마 허윤정으로 한번 해보지 뭐.

그게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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