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이야기
"네. 복강경은 꼭 3D로 준비해주시고요, 마취과는 어레인지 다 됐고..."
"선생님! 아악, 의사 선생님!"
극심한 복통으로 연신 좌우로 굴러대느라 정신없던 그가 수술실 간호부와 통화하고 있던 나를 긴박하게 불러댔다. 그는 청년 목축업 종사자로서 소들에게 복부를 받히는 사고를 당해 실려온 환자였다.
"진통제 더 드릴까요? 많이 아프시죠, 이제 곧 수술실로 이동할 거예요."
"아니, 진통제가 아니고. 펜! 종이!"
위장의 한쪽 벽이 완전히 터져버려서 하늘이 샛노래지는 고통이 온몸을 찌르고 있을터, 그는 뜬금없이 펜과 종이를 요청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으로 손아귀에 펜을 쥘 힘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었다.
"뭘 적으시려고요? 제가 대신 적어드릴게요."
"하아 그럼 부탁을... 케이일이칠이팔, 에이치오이삼사공!"
"네...?"
"아 잊어버리기 전에 똑바로 적어요! K12728! H52340!"
생사의 기로에 선 순간에서도 꼭 남겨야만 하는 기록이라니. 가족에게 남기는 유언이라도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중요한 금고나 통장의 암호? 나도 모르게 비장한 마음을 담아 곧은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적게 되는 것이었다.
"그 자식들 내가 돌아가서 다 죽여버릴 거야!!!"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그는 수술실로 이송되었다. 그것은 소들의 식별 번호였던 것이다. 환자는 수술을 받고 일주일째 되는 날 무사히 퇴원하였다. 아아. 소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