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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상센터 이야기 Nov 08. 2021

외로움의 농도

외상센터 이야기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외로움은 어디에나 있고 또 누구에게나 온다. 외로움은 찰나이지만 영원이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 외로움은 찰과상 정도의 가벼운 상처이고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다만 그 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외상센터 환자들은 유독 외로움의 농도가 짙다. 그도 그럴 것이 중증외상은 대개 음주 사고나 산업재해와 연관된다. 끈적끈적 비 내리던 여름밤, 경운기 전복 사고로 내원한 여든다섯의 비쩍 마른 노인도 그러했다. 노인에게는 보호자가 없었다. 혼자 경운기를 몰다가 사고가 난 탓에 도랑에 처박힌 채 얼마나 방치되었던 것인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척추와 골반 골절 부위에 급성 출혈이 있었고 의식은 흐렸다. 다행히 차트를 뒤지자 십 수년 전 진료 기록 구석에 적힌 아들의 연락처가 보였다. 긴 신호 대기음 끝에 들려온 대답은 매서웠다.


“전 그 사람 아버지로 안치니까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외로운 사람임이 분명했다.  



다행히 혈관조영팀이 색전술로 피를 잡았고 다음날이 되자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이 쩌렁쩌렁 울리게 고함을 칠 수도 있게 되었다.

“아 이거 못 풀어? 나 퍼뜩 집에 가 불라니까 다 빼 부레 아서.”

“할아버지, 집에는 어떻게 가실 건데요?”

“어쩧게 가기는 내 발로 걸어가제!”

“그러시구나. 할아버지 제가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요, 흉추 요추 5개랑 다리 뼈, 발가락 뼈, 골반 뼈가 싹 다 부러져서 절대 못 걸어가세요.”

“건 내가 알아서 집까지 뛰어갈랑께. 워째 가시나가 말이 많아?”

“지금 일어서면 전신 마비될 거라고도 제가 세 번쯤 말한 거 같네요. 어디 한 번 가 보시던가.”

“아 이거 안 풀러?”

“네, 부처님 예수님이 와도 안 풀어 드릴 거예요.”


뒤통수로 알아듣지 못할 육두문자들이 날아와 꽂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노인이 살아서 호흡하고 소리치고 있음에 감사했다. 팔십 중반의 환자가 출혈성 쇼크에서 무탈히 회복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 경운기를 타는 일상으로 그를 돌려보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조각난 뼈를 맞추기 위해 적어도 세네 번의 수술과 지리한 재활치료가 필요할 것이었다. 보호자 없는 무연고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사회 보호 시스템을 끌어오는 것은 내겐 익숙한 일이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치료를 받겠다는 노인의 의지였다. 그것은 아주 작은 천명이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은 더 이상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드님과 통화했어요.”

“…”

“아드님이 사정이 있어서 병원에 와볼 순 없지만 아버지가 힘내서 치료 잘 받았으면 좋겠대요.”

노인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다행히 아드님 못 오셔도 우리가 도와드릴 방법이 있다고 했어요.”

“… 근데 걔가 정말 그렇게 얘기했어?”

“그렇대도요. 그리고 저도 할아버지가 치료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다리로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걸어가요. 근데 다시 경운기 타셔야 되잖아요.”

“그건 그려.”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노인은 처음으로 누그러졌다. 이마에 칭칭 감은 붕대 때문에 뜨기조차 힘든 두 눈이 약간 커졌다가, 이내 풀어지며 젖어오는 것도 같았다. 그의 외로움의 농도가 조금은 옅어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나로 인해 더 짙어져 버렸을까. 이내 노인은 눈을 질끈 감아버려 나는 알 길이 없었다.

 

사람이 평생 느끼는 감정의 합이 액체 한 컵이라면, 그 컵들의 빛깔은 참으로 다양하리라.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처럼 다친 사람들의 외로움을 방울방울 모아 다른 그 어떤 따뜻한 액체로 바꿔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실감, 죄책감, 후회로 가득한 컵이 아닌 희망, 애틋함, 설렘, 자유로움의 빛깔로. 신체의 치유에 집중하다 보면 정신적 치유에는 소홀해지곤 한다. 중환자실 의사는 감정이라는 보따리는 구석에 숨긴 채 기계와 사람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그럴 때 환자들이 풍기는 짙은 외로움의 향은 나를 기계보다는 사람에 가까운 쪽으로 끌어당겨준다. 이제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지만 꼭 혼자는 아니다. 알고 보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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