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이야기
숨을 쉰다는 것.
밥을 먹는다는 것.
화장실에 간다는 것.
걸어 다닌다는 것.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파편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숨을 쉬는 기능을 잃어 평생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음식을 입으로 씹어 넘기지 못해 남은 여생 동안 콧줄로 공급되는 베이지색 액체가 식사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항문이나 생식기가 으깨져 의사가 만들어준 복벽의 새로운 구멍들을 통해 대소변을 받아내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고는 누군가의 일상을 앗아간다. 잃기 전까지는 모른다. 내 작은 몸짓들이 모여 만드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영수 씨는 회사를 다니며 건실하게 살던 39살의 청년이었다. 바쁜 일과 중에 잠시 시간이 생기면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곤 했다. 그날도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갑자기 한쪽 다리를 잃게 되기 전까지는.
내가 그를 만난 건 사고가 일어난 지 이미 한 달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다리의 개방성 골절에 대한 수술을 받고 발생한 합병증이 그의 생사를 위협하고 있을 때 나에게 의뢰된 환자였다. 참으로 많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고맙게도 그는 이겨내주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그가 전신 무기력으로 스스로 숨을 내쉬질 못해 몸 안에 이산화탄소가 쌓였고, 산소 포화도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버렸다. 응급 기관 삽관을 준비하기 위해 중환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나는 앰부백 (수동식 인공호흡기)을 두 손으로 짜며 목이 터져라 지시를 내리고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그의 양손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양 손가락의 모양이 이상했다. 엄지와 검지가 꼬여있었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꽉 접혀있었다.
"어 뭐지? 발작인가?"
"하하하. 선생님, 그게 아니고 하트잖아요 하트."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는 살려줘서 고맙다며 의료진들에게 손하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간호사들은 어떻게 그것도 모르냐며 나를 놀렸다. 몇 초 뒤 그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하트를 그리던 양 손은 침대 위로 풀썩 떨어져 버렸다.
그는 그렇게 한 달을 인공호흡기와, 투석기와 각종 항생제를 달고 생을 위해 싸웠고, 싸움에서 승리했다. 일단 살아내고 나면 그다음부터 중요해지는 것은 삶의 질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밥은 먹을 수 있는 것인가, 걸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사소한 질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사고로 심하게 뼈와 조직의 손상을 입은 영수 씨의 다리는 일단 그 자리에 붙어는 있었다. 하지만 그 기능을 잃은 지는 오래였다. 나도 그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예전처럼 그 다리를 원래의 용도로 사용하기는 힘들 거라는 것을.
"선생님, 저 앞으로 치료 열심히 받으면 걸을 수 있겠죠?"
이별의 순간에 그가 묻는다. 그는 이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만큼은 다른 대답을 듣고 싶은 것 같아 보였다.
"그럼요. 꼭 두 다리로 걸어서 저 다시 보러 오세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