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이야기
“빨리 옮겨!!”
“삐삐삐-”
“현장에서 기도 유지 실패했고, 내장 다 튀어나왔어요.”
“선생님! 산소포화도 안 잡힙니다. “
“인튜베이션 준비해 주세요. 보호자 있어? 보호자!
“당장 외상팀 콜 해! 손에 수갑은 뭐야?”
“몰라요 보호자 없어요 선생님. 심박수 30!”
“삐삐 삐삐-”
“아니 산소포화도 왜 안 올라가!”
“에피네프린 재주세요.”
“심박수 20대, 대퇴부 맥박 촉지 안됩니다.”
“심장압박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아 뭐야 환자 또 늘었어. 월요일 아침부터 짜증이 몰려왔다. 겨우 하나 비어있던 외상 중환자실 침대가 그새 또 차 버렸다. 주말 사이 일어난 일들을 캐치하기 위해 차트를 훑어나갔다. 이영철... 기억하기도 힘든 특별할 것 없는 이름. 더 이상 외상 센터에서 자살 환자를 마주하는 건 놀랍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민이 옥상에 올라갔다가 발견해서 신고.
목 4cm 열상으로 공기 샘. 좌 하복부 15cm 열상 및 내장 탈출.
지속적으로 바닥에 머리 부딪히며 혀 깨물고 대화 불가.
매우 비협조적, 수갑 채운 채 이송.⌟
“어휴, 어제 장난 아니었어. 간이랑 십이지장 다 찢어지고... 이비인후과 부탁해서 기도랑 혓바닥 겨우 붙여놨다. 근데 보호자가 없어 보호자가...”
무려 4명의 의사가 참여한 대수술을 받은 급여 1종의 무연고자. 원무과에서 또 이 사실을 알면 싫어할 것이다. 당장 제산제부터 싼 약으로 바꿔야겠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많이 덥지도 않고 좋아.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두렵지 않다...
수술은 그의 몸에 난 모든 구멍을 메꾸고, 장기들도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한 주, 또 두 주가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질 않았다. 이상하다, 깨어날 때가 지났는데. 무의식 상태가 보름 이상 지속될 경우 입으로 들어가 있는 인공호흡 튜브는 기관 절개를 통해 목으로 옮겨져야만 한다. 영철 씨 눈 좀 떠봐요. 초음파, 시티, 뇌파 검사지 어디에도 이 40대 초 남자의 무의식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혹시라도 놓친 외상의 흔적이 있을까 다시 한번 환자를 살폈다. 오랜 세월 햇볕이라고는 잘 보지 못한 듯 피부 빛깔이 차가웠다. 무엇이 그를 세상과 이별하게 만들었을까.
“어머니가 계시긴 하대요. 그런데 장애인 시설에 계시다는 것 같고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담당 간호사의 한 마디가 대략 그의 지난했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덫에 걸린 느낌. 좌절. 고통.
구원받고 싶어.
유독 자살 시도 환자들이 많이 실려온 달이었다. 이맘때는 원래 그런가 보지? 외상 센터에 부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확실히 예년보다 늘었어, 특히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길어지고 있었다. 센터에서 통계를 내어보니 실제로 가정 내 사고 빈도가 유의하게 증가했다. 특히 젊은 층이 폭력과 자해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이미 일어난 사고의 뒤처리에나 집중하자. 그게 외상 센터 의사가 할 일이야.
“야, 그런 책은 읽어서 뭐하려고 그래. 참의사 났구먼.”
정신과를 전공한 친구에게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서적 추천을 부탁했다. 한참 핀잔을 주던 친구는 이내 진중하게 책 제목을 하나 일러주었다. 자살의 이해와 예방. 나는 그저 영철 씨가 깨어나는 그 순간 그에게 건넬 완벽한 첫마디를 준비하고 싶을 뿐이었다. 왜 그랬냐고, 얼마나 위험했는 줄 아느냐고 다그쳐볼까. 아냐, 그를 다시 궁지에 몰아선 안돼. 다시 세상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따뜻하게 말해볼까? 냉철한 의사가 되어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예후에 대해서 설명해 줄까. 어떠한 말도 그의 지친 영혼을 달래줄 순 없을 터였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생사의 갈림길에서 겨우 닫혔던 그의 경부 열상은 수술대 위에서 다시 뚫렸다. 의료진의 허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제법 안온한 표정으로 호흡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신경학적 검사를 위해 눈동자에 불빛을 드리우자 그의 턱이 부르르 떨렸다. 경찰과 구급 대원에 의해 옥상에서 끌어 내려진 지 이십 여일 째 지나는 날이었다.
“그 기금은 500만 원이 한도예요. 사실 병원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란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도 정산하지 않을 병원비만 쌓여갔다. 여기저기 두드려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설상가상으로 난치성 경련까지 발생해 온갖 비싼 항경련제가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신약까지 추가해 보았지만, 야속한 턱은 계속해서 씰룩거렸다.
“선생님 이영철 환자 받아주겠다는 요양병원을 찾았대요!”
필시 둘 중 하나일 테였다. 굉장히 비양심적인 곳이거나, 나처럼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이거나. 다행히도 포도나무 병원은 후자에 속하는 곳이었다.
구해줘. 도와줘.
엄마가 보고 싶어.
살고 싶어...!
⌜윌리엄과 폴록(William & Pollock, 2001)은 역사적으로 자살을 도움의 호소(cry for help)라고 간주한 것을 고통의 호소(cry for pain)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실례지만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그를 보내고 계절은 두 번 바뀌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운전 길에 요양병원 간판이 보였다. 혹시 그새 의식이 돌아오진 않았을까? 턱은 아직도 떨리고 있을까? 소식을 듣고 찾아와 준 먼 친척은 없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원을 보낸 주치의가 안부 전화를 한건 처음이라며 간호사는 웃었다. 두 차례의 폐렴은 극복해 내었지만 아직도 그의 두 눈은 감겨 있을 뿐이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그의 어머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장애인 시설에서 아산에 있는 어떤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의식이 없어도, 서로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어도. 같은 공간에 모자가 함께 누워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아들이 내쉰 숨을 들이켜고, 아들은 엄마의 온기로 폐를 채워내고. 애초에 둘은 한 몸이었을 테니 그 영혼은 외롭지 않으리라. 깨어있는 삶의 고통이 지워버린 따뜻했던 기억을 그들에게 돌려줄 수만 있다면... 일면식도 없는 수화기 너머 간호사와 나는 어느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계신 병원이 어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