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센터 이야기
외상센터에서 일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빵 칼, 고기 칼, 뼈 칼, 햄 칼... 요리에 통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어떤 식재료를 다루냐에 따라 매번 다른 칼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요리를 위해 만들어진 칼들이 주방에서만 쓰이면 참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상외과 의사가 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떤 장기가 손상되었는지 추측하기 위함이다. 시티를 찍을 틈도 없이 수술방으로 바로 환자를 밀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배를 여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손상된 장기와 혈관이 무엇이냐에 따라 써전의 초단위 손놀림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칼에 찔린 자상은 겉에서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다. 폭 5cm 정도 되는 깔끔한 피부의 끊어짐.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함이었다면 말단이 넓은 푸주 칼 같은 것을 쓸리는 없기 때문이다. 상처 바로 밑에 있는 비장 파열일까, 아님 신혈관 손상? 혹 칼이 길어서 반대쪽 하대정맥까지 닿은 건 아닐까? 칼에 대한 정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서 칼로 공격당한 뒤 근처의 초등학교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한 환자가 이송되었다. 수술장에서 심장이 멎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의 몸속 수많은 손상을 꿰매고 복원하는데 장장 9시간이 걸렸다.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를 돌본 보건교사의 눈부신 활약과, 낯선 자가 초등학교 교실로 난입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경비에 대한 지탄만이 대서득필 되었다. 수술장에서 그를 살리기 위해 식은땀 흘려가며 가슴 졸인 수 십 명의 외상센터 인력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생명 아니던가. 흔한 일이기에 우리는 웃어넘겼다.
"교수님, 왜 다 큰 어른들이 칼 가지고 싸울까요?
말로 하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