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회사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영리기업을 업종, 매출 그리고 근로자 수 등 그 규모에 따라 분류 한다면 중소기업,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 분류에 따라 정부의 지원과 혜택이 달라진다. 중소기업은 법인과 개인사업자를 다 포함하여 전체 기업 수의 99.99%를 차지하며, 전체 근로자 중 약 80%가 여기에 속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있는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전체 기업 중 그 수는 약 0.07%이지만, 그 매출액과 고용인원의 비중은 약 15%를 차지한다. 따라서 대기업 수는 전체 기업의 0.03%에 약 5% 고용을 분담한다. 정부는 한국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의 수를 2030년까지 10,000개가 되도록 육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회사법인은95%가 주식회사이다. 그 다음 많은 것이 유한회사이다.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와는 달리 상장을 못하기 때문에 자본을 불특정 다수로부터 조달하는데 불리하다. 따라서 유한회사는 세계적인 초대형 회사로는 적합치 않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비상장 유한회사지만, 매출액과 순이익 등에서 국내 최대의 자동차회사와 비등한 세계 최고의 자동차 부품 회사가 있다. 1886년 독일에서 창립된 보쉬(BOSCH)이다. 이 회사의 주식 92%는 복지재단이 가지고 있으나 경영에 간섭하는 의결권은 하나도 없다. 전체 의결권의 93%는 재단이 선임한 신탁회사가 가지고 있고, 그 회사가 전문경영인을 선임하여 철저하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있다. 보쉬는 전세계에 약 40만명의 고용을 유지하는 초 글로벌 부품기업이다.
자동차는 2만여개, 비행기는 약 20만개, 우주발사체 누리호는 약 37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완성차 메이커는 부품의 약 70% 이상을 외주 즉, 하청(下請)주어 공급받는다. 자동차 신제품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생산 종료까지는 약 6~7년 정도 걸리므로 하청 받은 부품업체는 완성체 메이커와 아주 긴밀한 협력적 거래관계를 가져야 한다. 품질, 가격, 생산량 등에서 그들은 상호 의존적이므로 완성차 메이커는 ‘하청업체’라 부르지 않고 ‘협력업체’라 존칭하며 상생을 강조한다.
협력업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자동차 조립공장 안에 또는 바로 옆에 위치하여, 조립공장의 차종 별 생산계획과 각 부품의 서열번호를 전산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받으면서, 완성차 조립 타이밍에 맞추어 서열부품을 생산하여 동시에 조립 라인에 직접 납품하는 ‘직서열(Just in Sequence)업체’가 그중 으뜸이다. 이 ‘직서열방식’은 자동차 조립공장의 ‘부품 무재고운영’을 가능케하니, 도요타의 ‘JIT(Just in Time)방식’보다 더 진보된 시스템이라고 평가된다. 직서열업체 외에도 공장에 직접 납품하는 ‘Tier 1’이라 부르는 1차협력업체가 있고, 그들에게 납품하는 Tier 2( 2차협력업체) 그리고 그 아래의 Tier 3(3차 협력업체) 등이 있어, 완성차 메이커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완성차 업체, 직서열업체 그리고 1차협력업체는 상호 동반자적 관계를 인식하여 경영 및 품질에 관한 정책 및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알면 과연 그들 간에 공동체라는 유대감과 상생해야 한다는 인식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괴리가 크다. 코로나 19이후,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메이커는 판매물량에서 실적이 향상되어 글로벌 3대 메이커로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그 도약의 기저에는 1, 2, 3차협력업체의 희생과 모순적 이익구조가 숨겨져 있다. 테슬라나 도요타가 두 자리 숫자의 영업이익율을 내고 있으니 우리의 완성차 메이커도 최소 8~9%의 영업이익율을 달성하려고 납품단가를 마른 수건 짜듯 쥐어짰다. 그 결과 1차협력업체는 그것의 반에도 못 미치는 3~4%의 이익율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 100대 자동차 부품회사의 경우 최근 매출은 약간 증가하지만 이익 및 이익율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이다. 1차협력업체가 그 정도이니 2차, 3차로 내려가면 영업이익은 1~2%로 떨어지거나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상태로서, 은행 이자율에도 훨씬 못 미치는 사업을 해야 한다.
완성차 메이커를 갑, 협력업체를 을이라 약칭하고 설명한다면, 을에게는 실질적으로 ‘가격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고난이 시작된다. 납품계약 체결 시, 갑은 을에게 매년 일정 %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그 제품 Life Cycle 동안의 순차적 가격인하 목표를 조건으로 달아 계약한다. 원가절감(CR: Cost Reduction), 품질 및 숙련도 향상 그리고 을의 초기 투자비 회수라는 관점에서 일견 타당성 있어 보이는 납품가격 설정이다. 그러나 그 후 경영 환경의 변화는 거의 무시된다. 예를 들어, 원료 및 자재비나 인건비의 상승 또는 급격한 환율 변동 등으로 인한 조달비용 상승 요인이 납품가의 5% 이상일 경우에만 가격 재협상이 겨우 가능해 진다. 영업이익율 1~4%의 협력업체가 5% 미만의 원가 상승요인은 전부 흡수하라는 것이고, 5% 이상 원가 상승 요인일지라도 그 일부만 납품단가 인상에 반영해 주는 비탄력성이 그 생태계를 지배하는 관행이다. 또 자발적으로 원가절감(CR)을 하여 이익을 실현하면, 갑으로부터 그만큼의 단가인하 요구가 들어오니 CR조차 자발적으로 실행하기 꺼려지는 상황도 있다. 완성차 메이커는 1, 2, 3차 협력업체의 인내와 차별적 이익구조를 언제까지나 계속 요구할 수는 없다. 그들도 이젠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누려야한다.
협력업체의 최근 위기는 인건비 상승과 고급 및 단순직 인력의 부족으로 더욱 심각하게 가중되고 있다. 법무부가 2024년에 고용허가제 인원을 165,000명으로 증원하여 외국인 근로자의 공급을 확대하려는 조치는 미봉책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현재 부품업체에서 단순직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은 날로 증가하여 지방의 경우 약 50%에 육박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청년들의 지방 근무 기피 등을 감안할 때 적극적인 외국인 노동력의 제도적 공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글로벌 자동차 강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계속 유지하려면 이제 부품업체의 육성과 생존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자동차산업의 공급망(Supply Chain)은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Network로 자리매김한지 오래 되었다. 그 공급망의 특징은 원자재와 부품소재 조달 등에서 소스와 경로가 길고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그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 19 이후, 반도체나 배터리 원료 부족 그리고 물류대란 등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동차산업에 영향을 끼쳤는 지에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방지법)이나 EU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역내 생산 소재나 부품을 요구하는 등 보호무역과 탈(脫) 세계화가 강화되고 있다. 독일에는 세계 1위 부품회사 BOSCH가 있고, 일본에는 2위 DENSO 가, 캐나다에는 3위 MAGNA 가 있다. 미국에는LEAR사가 있으나 8위에 그쳐 자동차 강국으로서 위상을 점차 상실해 가면서, 미국의 자동차 및 부품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다. 만일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자동차 및 그 부품의 늘어나는 무역적자를 이유로 우리에게 어떠한 생떼를 쓸지 불안하다.
자동차산업의 생태계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정부는 친환경 미래차로의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시기 적절한 부품산업 육성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보쉬와 같은 초 글로벌 회사로의 성장은 논외이지만, 적어도 정부는 모든 1차협력업체가 중견기업으로서 합당하고도 안정적인 이익을 내면서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육성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1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나 기술 습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2, 3차협력업체에 대한 인력 및 금융지원에 초점을 맞춘 지원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그래야 생태계가 산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