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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켸빈 Oct 14. 2021

왜 동성애가 부적절합니까?

언니, 사랑해요

      


 동성애, 같은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을 속칭 ‘이반’, ‘성 소수자’라고 한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일반적인 사랑은 뭐고, 이반적인 사랑은 뭘까? 대체 누가 그 기준을 정하고, 누가 감히 이해하고 말고 하며, 어떤 의도로 금기시하고 배척하는 걸까?  



 

 각기 다른 성별, 즉 여자와 남자가 만나 2세를 낳는 성스러운(?) 모양새가 우리 시대의 ‘올바른 로맨스’다. 00 이도 얼른 좋은 남자(여자) 만나 시집(장가) 가야지, 남자 친구(여자 친구) 꽉 잡아야지. 이런 지긋지긋한 말이 ‘덕담’인 사회니까.     


 대체 왜 동성애는 부정당하는 것일까? 특히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동성애를 결사반대하는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나는 몇 개의 서적을 뒤져 봤었다. 그 몇 권의 책에서 얻은 결론은, ‘한국의 기독교는 내부의 결속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공공의 적이 필요했는데, 동성애가 딱 알맞은 먹잇감이 되었다.’라는 것. 너무 어이없는 이유였다. 거기에는 결코 어떤 논리적인 근거도 없었다. 뭐 가정 파괴범이라느니, 자연을 거스르는 행태라느니, 부적절한 행위라느니, 하느님 앞에 죄짓는 것 등. 그냥 다 같다 붙이면 죄목이 되니까.     


 그렇게 치면 인위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피임 기구, 시술을 사용하는 행동이나, 딩크 부부로 살아가는 것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인가? 왜 유난히 동성 간의 사랑만이 사회적으로 큰 죄악이 되는 걸까? (여기서 생각난 건데, ‘낙태 불법’도 여성의 개인권을 굉장히 침해하는 구시대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선 다른 글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고작 2세를 생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가능성에 따라 사람의 사랑의 방식이 일반과 이반으로 나뉘는 것은 썩 부당한 일이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기에 굳이 자손을 퍼뜨릴 어떤 의무도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음을 나눌 상대방을 결정하고, 또는 내가 살아온 이 험난한 사회를 내 아이는 겪게 하지 않을 선택의 자유가 있다. 연애의 상대도, 결혼도, 출산도 오로지 내 인생의 한 페이지이며 나만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들에 깊게 침투하고, 어떤 한 행동으로 이끈다. ‘좋은 배우자 만나서 애 낳고 잘 살아라. 그게 효도다’ 참 지독하다.     


 한국의 유별난 가족주의, 부모 자식으로 이루어진 정상가족에 대한 오랜 시간 행해져 온 세뇌. 우리는 제발 그것으로부터 탈피하고 나 자신의 결정을 믿어야 한다. 나는 여성으로서 말과 마음이 잘 통하는 여성분과 깊게 친해지고, 그러다 보면 긴밀한 접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떳떳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뭐 어쩌라고? 심지어 성인인데.     


 오히려  사회에서 더 심각하게 들고일어날 문제는 ‘정상가족’ 안에서 행해지는 가정폭력, 가정불화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반대!’ 현수막은 질리도록 봤어도, ‘가정폭력 반대!’, ‘성 구매 반대!’, ‘부부 폭력 금지!’, ‘매매혼 반대!’라는 현수막은 절대 본 적이 없다. 진실로 가정과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그것들일 텐데도.    

  

 나는 감히 동성애자를 타자화하며 응원하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에는 어떤 제삼자의 응원이란 게 필요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어떤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 있다. 사회가 그 풍부한 가능성을 일정 부분 거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여자니까 남자만을 좋아해야 돼. 너 혹시 여자 좋아해? 너 좀.. 이상하구나. 아직 어려서 그래. 저런 애가 제일 먼저 남자 만나서 시집간다. 기타 등등.     

     


 사랑은 사람이 행하는 행위이기에 매번 성스럽고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어찌 보면 굉장히 인위적이고 우연적인 두 사람의 사적인 소통인 것. 그 서투른 모양새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막론하고 모두 같다. 사람이 사람 사랑하는 모냥새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러니 누군가가 우월감을 갖고 다른 사람의 사랑의 형태를 배척하는 것은 그럴 자격도 없을뿐더러,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사랑을 빙자한 미성년자 약탈과 데이트 폭력, 착취 연애, 무분별한 즉석 만남을 통한 성병 전파 행위는 이 굴레와는 전혀 다른 얘기다.)     


 그들이 그들 방식대로 사랑하도록 놔두는 것이 맞다. 어떤 판단도, 동정도, 섣부른 포용도 없는 순수한 무관심. 그것이 맞는 행동인 것 같다. 개인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 부분에는 어떤 사회적 압박도 가해져서는 안 된다. 다양성을 숨 쉬듯이 인지하는 발전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성애 멸시라는 오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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