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하루의 시작
아침 7시.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눈이 뜨인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의 각도, 커튼에 드리운 그림자의 결, 침대 옆에 두었던 컵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전날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대로 이불을 걷고 부엌으로 향한다. 주전자를 올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린다. 가끔은 이 반복이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익숙함은 나를 안정시킨다.
세상은 늘 변화하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도, 낯선 환경, 도전의 연속이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변화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익숙함 속에 숨은 리듬은, 마치 잔잔한 음악처럼 나의 하루를 감싸 안는다.
나는 물을 마실 때 늘 왼손으로 컵을 든다. 마지막 한 모금은 항상 남긴 채 싱크대로 향한다. 습관이 된 행동들이고,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하루의 경계선이 흐릿해질 때, 익숙한 패턴은 나를 다시 일상으로 이끌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예기치 않은 일이 닥쳐 불안해질 때면 나는 나만의 루틴으로 돌아온다. 창문을 열고, 바닥을 쓸고, 가볍게 음악을 튼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작고 단단한 의식이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나를 이루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말한다. “익숙함은 안주이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의 핑계”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익숙함은 내가 매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친구다. 그것은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며, 나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틈이다. 바쁜 하루 속에서, 나는 그 틈 안에 잠시 숨는다.
저녁이 되면 책상에 앉아, 똑같은 자리에 두었던 노트를 펼친다. 하루 동안 메모했던 단어들을 다시 읽는다.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위로는 바로 거기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러나 조금 다른 나. 변화는 거대한 폭풍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 속에서 아주 천천히, 조용히 다가온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는 길도 낯설고, 익숙한 얼굴도 낯설다. 그럴 때면 나는 나만의 루틴으로 돌아간다. 아침의 커피, 노트에 적는 문장 한 줄,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 습관. 그 사소한 반복들이 나를 다시 연결시켜 준다. 세상과 나, 사람과 나 자신.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게 해준다.
변화는 삶을 움직이게 하지만, 익숙함은 그 삶을 지탱해 준다. 나는 이 익숙함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리듬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똑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똑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