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자주 먹던 회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먹을 수 있던 값싼 식재료였기에 엄마도 부담 없이 살 수 있었으라 생각한다.
회라고 하기엔 생소했던 오징어! 가늘게 채 썰어진 몸통은 비린 맛 하나 없이 쫄깃한 식감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밥상에 오징어회가 있는 날이면 내가 열 수 있는 최대한으로 위를 늘려 먹곤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오징어회를 먹기 힘들어졌다. 오징어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생물오징어는 더 귀해졌고, 내륙지방으로 이사 오면서 더더 귀한 수산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징어회뿐만 아니라 오징어숙회, 오징어국, 오징어볶음, 오징어가 듬뿍 들어간 부침개, 우리 엄마가 자주 해주던 오징어해물찜까지 내 추억에 가득한 오징어요리들!
그러나 정작 내 아이들은 오징어를 즐기지 않는다. 특히 둘째는 질긴 음식은 딱 싫어해서 껍질을 벗기지 않은 오징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까다롭지만 껍질을 벗겨내는 정도의 수고로움은 감수하고 가끔 오징어를 사서 먹곤 한다.
이번주에도 트레이더스에서 싱싱한 오징어 4마리를 동네마트 2마리 가격정도로 할인받아 사 왔다. 내장손질이 다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오징어 손질은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다. 신혼 때는 당연히 손질된 오징어를 구매했지만 지금은 같은 값이면 양이 더 많은 쪽을 선택하는 주부가 되었고, 4마리의 오징어를 해체과정은 빠르게 진행된다.
몸통과 다리를 분리할 때 다리와 연결된 내장들이 한 번에 쏙 나올수록 기분이 좋다. 내가 직접 손가락을 넣어 빼지 않아도 되기에! 아무리 먹거리지만 누군가의 뱃속을 휘젓는 일은 별로다.
그러고 나서 다리를 손질한다. 우리 엄마가 보시면 잔소리폭탄이겠지만(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리 위 오돌오돌한 부분이 있는데 나는 그 식감을 싫어해서 버리고, 우리 엄마는 그 부분까지 알뜰하게 사용하신다. 엄마 시점에서는 먹을 수 있는 부분을 그냥 버리고 있는 격!) 거의 정확히 눈과 입 사이를 자르고 입까지 쏙 빼고 나면 손질은 끝난다.
참 간단해 보이지만 이후 일이 더 남았다. 바로 버려진 내장들을 재빨리 음식쓰레기통에 버리고 와야 한다는 것! 지금처럼 더울 때는 잠시만 방치해 놔도 그 냄새가 참 역겨워서 일사천리로 정리해야 하는데, 이 과정 또한 번거롭다.
이렇게 예쁘게 손질된 오징어는 우리 집에서 오징어볶음으로 내어줄 때 가장 잘 먹는다. 당연히 둘째용은 껍질까지 벗겨 간장양념으로 따로 준비해 준다.
메인반찬이 오징어볶음인 날은 대부분 비벼서 한 그릇 뚝딱인 날이 많기에 다른 반찬도 잘 준비하지 않아 나에겐 좋은 메뉴이다. 오징어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도 조금씩 크면서 볶음은 덮밥식으로 해서 잘 먹어주는 편이라 요즘은 오징어구매를 더 자주 하고 있다.
반찬이 마땅치 않은 날, 양파와 파만 넣고(욕심껏 많은 야채를 넣으면 채수로 인해 양념 맛이 흐려지고, 오징어향도 약해져서 최소한의 야채만 넣는 편!) 센 불에 볶아낸 단짠단짠과 단맵단맵한 두 가지 버전의 오징어볶음을 비벼먹거나 쌈 싸 먹으면 간단하지만 집밥을 먹인 기분이 든다.
남은 오징어는 무엇을 해 먹을까?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오징어물회가 생각난다. 회로 먹다 질리면 집에 있던 야채들 쓱쓱 썰어 넣고 양념장과 물만으로 뚝딱 만들어주셨던 그 맛!
회는 없으니까 익혀서 채 썰어 만들면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더위가 가시기 전에 그 맛을 재현해 봐야지!
오징어껍질 벗길 때, 전 소금을 이용하는 방식보다는 키친타월로 하는 게 더 편해서 애용합니다. 그리고 질김에 아주 예민한 둘째를 위해 삶아낸 후에도 한 번 더 속껍질이 제거된 건지 확인하며 벗겨서 주고 있어요^^ 좋은 식재료 같은 먹으면 더 행복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