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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섭 Mar 08. 2024

문예사조라는 허상

김소월 이상 한용운 백석 김수영

  한국 현대시가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계몽주의,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까지는 상징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1930년대에는 모더니즘, 1950년대 6.25 사변 이후는 실존주의, 현재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시대에 따라 문예사조가 바뀌어왔다고 학문은 주장한다.  


  학문이 주장하는 소위 계몽주의, 상징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모더니즘에 속하는 시를 지금도 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한다. 또한 시를 읽거나 해석하려고 할 때 먼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읽거나 해석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상징주의 관점, 낭만주의 관점, 모더니즘 관점 역사주의 관점 민족주의 관점 포스트모더니즘 관점 등등이다. 

     

  그러나 시는 그 어떤 관점도 없이 읽어야 한다. 이것이 시를 쓴 시인과 시에 대한 존중이다. 시를 읽기도 전에 어떤 관점을 가지는 것은 시인과 시에 대한 모독이고, 시를 색색의 안경을 쓰고 멋대로 읽고 해석하겠다는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문예사조는 시 이후에 일어나는 부차적인 감상의 분류일뿐이다. 시의 본질이 아니다. 김수영은 이미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라는 진술로 본질이 뒤집힌 삶, 시, 예술에 대해 한탄했다. 

     

  시의 본질은 창작의 진실에 있다.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읽어야 한다. 이것이 시인과 독자의 소통이고 이 소통에서 진정한 감동이 발생한다. 이를 벗어난 것은 허상을 주고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징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라고 하는 1920년대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를 살펴보자.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가슴속에서 들끓고 있는 망국의 한과 친일파에 대한 분노를 자신의 방식으로 드러낸 시다. 문예사조를 생각하면서 쓴 시가 아니라, 가장 익숙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를 쓴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한용운 「님의 침묵」 역시 다르지 않다. 조선 왕 고종의 죽음으로 나라가 망해버린 망국의 절망과 한탄을 그러나 결코 망국을 받아들이지 않고 국권 회복을 위해 결사의 저항을 하겠다는 결기를 시의 형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것이 본질이다. 

  김소월, 한용운이 가슴 깊이 고민한 것은 문예사조가 아니라 망해버린 조선의 현실이고 삶이고 민족의식이고 국권회복의 열망이다.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1930년대 이상과 백석의 시를 살펴보자.

  이상의 「오감도」를 초현실주의 또는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문예사조 해석은 충격적이고 허망하기까지 하다. 

  이상은 「오감도」에서 강제 한일합방으로 식민지배 노예가 되어버린 조선 민족의 죽음과 다르지 않은 삶을 설계도면 형식으로 적확하게 펼쳐 보여주며 결사 항전을 선언한다. 조선을 식민지배하는 제국주의 일본을 조롱하고 용광로 불기둥의 분노와 증오로 멸망시키겠다고 절규하면서, 동시에 식민지배에 무감각해져 가는 조선 민족에게 각성하라고 소리친다. *(각성이라고 계몽주의라고 할 것인가?) 

  조선 민족의 해방과 독립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을 향해 부릅뜬 이상의 두 눈과 처절한 결사 항전의 시에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등 문예사조라는 허상을 뒤집어씌운 해석은 참담한 모독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더욱 악랄해지는 제국주의 일본 폭압의 식민지배와 민족말살정책에 굴복할 수 없지만, 맞서 싸우지도 못해 도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백하는 나약한 저항의 고뇌와 절망을 보여준다. 문예사조를 넘어 이 시를 한국 현대시 최고의 연애시라고 찬사를 보낸 학문은 한국 현대시의 미래를 위해 백지에서 한국 현대시를 겸손하게 다시 읽어야 한다.  

   

  실존주의 시대라고 하는 1950년 6.25 사변 이후 김수영의 시를 살펴보자.

  김수영 「풀」은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분노하면서 민주주의가 죽어 말살될지 모른다는 절망적인 현실에 맞서서 4.19와 같은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죽여 말살시키려는 박정희 세력을 몰아내자고 외친다. ‘날이 흐리고 민주주의 근원이 병들어 눕는 박정희가 3선 개헌을 시도하는 지금이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때다’라는 김수영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외침이 「풀」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문예사조란 시 창작 재능 없음과 시 해석 능력 없음을 숨겨 위장하기 위한 술수일 뿐이다. 시의 형식은 시인 안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인이 사는 현실에 대한 시대 인식이고 세계관이고 가치관이다. 이것이 시의 바탕이고 근원이다. 

  시의 본질은 시 이후에 일어나는 부차적인 감상의 분류이고 유행일 뿐인 문예사조가 아니라, 시 창작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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