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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혈약을 먹는데, 당뇨약도 먹으라네

by 행복만땅

작년 7월 4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난다. 미국의 독립 기념일인 그날이 내겐 나를 구속하는 날이 되었다. 아침에 아내를 직장까지 데려다주고 중동대로를 타고 오는데 갑자기 시야가 일렁거렸다. 유리창 앞에 서 있는 차들이 TV 속에서 오래된 과거 장면을 끌어오듯 휘청거린다.

‘뭐지? 왜 현기증이 나는 거야?’


그날따라 차창 밖은 날이 흐리고 비가 조금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빨라지고 약간의 어지럼증을 동반하며 의식이 흐려질 것처럼 가물가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5년 전에 뇌경색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도 아버지처럼 뇌경색이 오는 건가? 뇌경색이란 이런 건가? 안돼.’

창문을 열고 점점 멀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차창 밖을 왼팔로 두세 번 내리쳤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엑셀레이터를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온전하게 걸어서 제 발로 병원에 가셨다가 저녁에 바로 뇌경색을 일으켜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더군다나 아버지 뇌경색이 올 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 감기고 안면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걸 본 나로서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이러다 나도 아버지처럼 되는 것 아니야, 순식간에 기억을 잃고 쓰러졌다가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 가족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가늘게 들린다면.’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가장 가까운 병원을 생각해 내고는 바로 부평 세림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러 간단한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는 수치상으로 특이한 소견이 없다고 했다. 다만 혈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경우 그런 증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걱정된다면 큰 병원을 방문하여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 권했다. 집 근처 가까운 여성 병원에 들러 경동맥 검사를 받고 19% 정도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참에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근본적인 병의 원인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두려웠다. 그대로 있다간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도 생길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아직은 집의 가장 아니던가? 내가 쓰러지면 우리 가정이 다 무너진다는 생각에 어디든 크게 아프면 안 될 것 같았다. 대학병원 심장혈관과 신경과 병원을 예약하고 심장 CT, 기능검사, 엑스레이, 호르몬 검사와 뇌 사진도 찍었다.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은 범죄자가 재판정에서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만큼이나 긴장되었다.

“심장도, 자율신경계도 이상이 없어요, 다만 경동맥이 조금 막히기는 했어요. 고지혈증이 문제인 것 같아요. 약을 먹으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은 사무적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선생님, 더 좋아지기도 하나요?”

“좋아지지는 않지만, 더 나빠지지는 않고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동안 약 한번 먹지 않은 걸 큰 자랑거리로 삼았는데 이젠 그 자랑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내 나이 또래는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약을 먹고 있는 걸 알았기에 건강 검진 시 약 복용 여부에 당당하게 ‘아니요.’를 체크할 때 그리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제 그런 작은 치기조차 부릴 수 없음이 조금은 나를 암울하게 만들기는 했다. ‘받아들여야지.’ 나도 점점 노인의 반열에 들어간다는 사실에 조금은 씁쓸했다. 올해 1년 만에 정기 진료차 신경과에 들렀다. 피검사 결과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선생님, 당뇨약을 먹어야 하겠는데요. 공복 혈당과 당화 혈색소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네, 처방해 주세요.”

나는 두말없이 대답했다. 그토록 당뇨약만큼은 안 먹겠다고 버틴 내게 스스로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요 몇 년 동안 내 혈당은 당뇨와 당뇨 전 단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병원을 나오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지혈약을 먹고 있는데 당뇨약도 먹으라네, 의사가. ”

몇 년 동안 현미밥을 주식으로 삼고 각종 즉석식품, 단 음식을 자제했던 일들이 뇌리를 스친다. 치킨 한 조각을 먹더라도 양념 대신 프라이드를 먹고, 뷔페식당에서도 샐러드는 소스 없이 먹으며, 걷기 운동을 하겠다고 아침저녁으론 노트에 운동한 날과 안 한 날에 O, X 치던 일들이 다 우습게만 여겨졌다.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난 우울했다. 의사의 진단은 정말 무섭다. “말기 암입니다, 6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란 말에 환자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 의사는 무지막지한 권한을 지닌, 우리의 생사를 틀어쥔 재판관이다. 이제는 의사가 내린 당뇨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무시할 수 없다. 저걸 무시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강력한 주문이 내려올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사이에 나는 약을 2개나 먹는 환자로 전락했다. 60세가 넘었으니 이제 그럴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60년 동안 써먹었는데요, 기계도 그 정도 부렸으면 다 고장 나죠. 살살 달래가면서 사는 거죠.”

작년 1월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환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난 참 젊은이가 아니지,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우리 나이에 약 한두 개조차 안 먹는 사람이 있더냐.’라며 스스로 위로 삼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좀 더 능숙해지는 것과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부정하고픈 일들을 만나게 된다. 누님의 이혼, 자식의 죽음, 어머니의 암 진단, 태어난 딸의 선천적 기형, 실직,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의 사기, 아버지의 치매, 전쟁, 생각지도 않았던 교통사고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내 경험이기도 남의 이야기이기도 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 노년이 되면 이러한 일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금세 그런 상황에 적응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까지도 말이다. 젊은 시절엔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고픈 슬픈 일들도 노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인정하게 된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병으로 몸이 약해지고 마음이 불안해지겠지만, 순순히 그 병을 인정하고 친구처럼 평생 그 병과 함께 하는 것도 노년만의 지혜라면 지혜일 것이다. 오히려 한두 가지 병을 몸에 지니고 사는 것이 병원을 가까이하고 몸 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하게 만든다. 평소 건강하다고 병원 한번 가지 않음을 자랑하다가 어느 날 부고가 날아오는 죽은 사람보다는 행복한 일이다. 여름에 녹색으로 무성한 은행나무는 가을이 되면 황금빛으로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겨울엔 생명없는 마른 나뭇가지에 걸쳐진 소복한 눈송이를 바라보는 일에서도 순간의 행복을 느낀다.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노년의 삶은 젊은이에게는 경적을 울려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그들이 질병 몇 개 있더라도 얼마든지 인생이 풍족할 수 있으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긍정하고 더 많이 알아가는 원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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