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로 출근한 지 이제 막 3년을 넘었다. 출근을 위해 남들처럼 경쟁력 있는 입사 시험을 치른 것도 혹독한 면접을 본 것도 아니다. 블로그는 주변의 권유와 떠밀리듯 시작한 나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3년 전 블로그를 시작할 때 직장 동료의 강요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직원들은 평상시 내가 독후감을 쓰는 것을 보고는 물어보곤 했다.
“왜 글을 써서 파일에 저장만 하세요? 블로그에 올리면 다른 사람도 보고 기록도 영원히 남는데요?”
“아. 그런 게 있어요? 잘 알지도 못하고 번거롭기도 해서요?”
“제가 틀을 만들어 드릴게요, 한번 해 보세요?”
그렇게 해서 블로그 세계에 입문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블로그 용어도 어려웠고 매일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일이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블로그는 독후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되돌아본 인생, 독후감 즐기기’라고 명명했다. 20년 이상 독후감을 써 왔으니 내게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제법 이름은 그럴 싸 했다. 처음 일 년 동안은 이웃 수 늘리기에 광분하다시피 했다. 대부분 초심자가 그렇듯 나도 매일 ‘친구 요청’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어느 날 이웃 수 늘리기가 큰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그보다는 친구는 몇 안 되더라도 내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고 댓글 달아 공감하는 찐 이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 이웃의 일상을 알아가는 일은 나름 큰 행복이기도 했다. 공무원 후배인 행안부 공무원은 처음엔 일상적인 이야기, 이라크 파병 생활을 쓰더니만, 나중엔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웃은 교사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해 출판사 편집, 진로상담 교사, 7급 공무원을 하다가는 휴직하고서는 소설로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지금은 베스트 셀러인 개인 수필집도 출판했다.
블로그는 각자의 성장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1일 1포, 1일 3포의 습관이 만든 기적이다. 1일 1포는 하루에 글 하나를 발행한다는 의미다. 내가 아는 60대 후반의 이웃은 유치원 교사 생활을 20년 이상하고 퇴직 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아 지도서를 발행했는데 이웃에게 무료나눔 하였다. 그가 졸업한 대학에도 배부했는데 나중엔 책을 읽은 대학 측에서 강의를 몇 번 부탁하더니 올해는 정식 교수로 계약하고 수업까지 나가고 있다. 참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하고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이 더 많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끝까지 집중하지 않고 포기해서’라는 『원씽』을 쓴 게리캘러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 블로그를 하는 이웃들을 보면 3년 전 처음 시작했던 호기 찼던 이웃들의 모습이 모두 보이지는 않는다. 바닷가 밀물과 썰물처럼 블로그 이웃들은 어느 날 나타났다가는 소리 없이 사라지기 일쑤다. 때론 볼썽사나운 이웃들도 있다. 약장수처럼 자신의 글을 판매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초창기 아무나 이웃 추가했다가 내 블로그가 그의 글로 도배되어 상업적으로 쓰이는 것을 겪은 바 있다. 그 이후론 이웃 추가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
블로그는 관심 영역이 다양해 그것을 두루 살피고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대중음악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이웃에게선 고전 음악부터 최근 유행하는 아이돌 MZ 노래까지 들을 수 있다. 그가 올리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몰입되고 황홀경에 빠진다.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된다. 문화, 웹툰, 전시 위주의 글을 쓰는 이웃을 방문하면 어떤 전시가 유행인지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시대 흐름을 읽게 된다. 블로그의 매력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쓴 글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데 있다.
블로그는 관심이 비슷한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글을 매일 발행하는 이웃은 지지치 않으려고 매일 글로 자신을 다그친다. 그런 그에게 난 말하곤 한다.
“블로그 한번 시작했으니 10년은 하자고요, 1만 시간의 법칙을 증명합시다.”
“네네. 그 약속 꼭 지키세요, 10년 후에도 그 자리에 계셔야 해요.”
우린 서로 약속이라도 하듯이 공언하곤 한다. 10년이면 무언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블로그는 이제 내 놀이터가 되었다. 인간은 원래 ‘호모 루덴스’, 유희적 인간 아닌가! 우리는 재미를 찾아서 움직인다. 그 동력엔 흥미가 있다. 마음을 뛰게 만들고 그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 관심이다. 사람들은 타고난 성정에 따라 누구는 음식 만들기를, 누구는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농사 짓기를 선호하고 또 누구는 운동을 최애 관심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블로그로 투영되고 그 사람을 만든다. ‘글은 곧 사람이다.’란 알퐁스 도데의 말은 이제 ‘블로그는 곧 그 사람이다.’로 옮겨 적어도 무방하다.
이제 3년쯤 경험해 보니 블로그가 주는 매력은 꾸준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1일 1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일주일에 2, 3회 글을 발행한다. 그런 나도 초창기 1년 동안은 남들처럼 1일 1포에 집중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1일 방문객이 200명에 육박했다. 그러다 대상포진이 오고 병원에 열흘 입원하고 나서야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쓰러지면 다 소용없지, 건강이 제일이야.’ 생각하고는 발행 횟수를 줄였다. 지금은 1일 방문객이 100명도 채 되지 않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이제는 매일 글을 발행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다. 내 글을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방문객이 적어도 괜찮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내가 쓴 글을 보고서 공감하며 고개 끄덕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세상은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기에 방문하는 이웃 중에 몇 명은 내 글에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
노년이 될수록 무의미한 일들로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일은 불쌍한 일이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노력했으면 이젠 좀 쉬어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몇십 년 동안 치열하게 생존과 가족 돌봄을 위해, 사회적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살아온 것은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이제 퇴직했으니 모든 걸 내려놓고 무위도식하듯 사는 건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육체가 약해진다. 직장 생활 같은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동반되어야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블로그를 통해 직장 이후의 즐거움을 만끽하듯이 누구나 자신만의 즐거움의 영역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나이 먹으며 사는 것이 노역이 아닌 새로움이고 기쁨이면 좋겠다. 오늘도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 도연(道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