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at Feb 28. 2022

[Hot Stuff] In the Kitchen

뮤지션 보일의 토마토 스튜, 창밖의 고양이, 그리고 나쁜 마음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집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해 같이 나눠 먹는 그림을 예상했는데, 정성껏 차린 한 끼를 대접받았죠. 아티스트의 주방에선 요리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거라는 편견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자연스럽게 화음을 맞추듯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주방과 소울 푸드가 궁금해졌어요. 또 그곳에는 어떤 음악 이야기가 살아 있는지도.


마음 같지 않게 날씨가 뚝 떨어졌던 날, 뮤지션 보일 님을 만났습니다. 보일 님은 앨범 <Yuri>를 통해 하늘거리지만 푸르스름하게 선명한 보컬로 듣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심원한 온기를 전했는데요. 최근 첫 정규 앨범 <나쁜 마음>을 발표했습니다. 이 겨울을 무미건조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반가운 소식. 보일 님이 정성껏 내온 따끈한 스튜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린 몸을 달랬습니다.







이렇게 마주하니 무척 반갑고 신기해요.
안녕하세요. 무언가를 꾸준히 만들고 있는 사람, 보일입니다.



얼마 전 9곡으로 채운 정규 앨범을 냈는데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정규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도 있을 테고.
거창한 야망이 있거나 하진 않았어요. 처음에는 그냥 모아 놓은 곡들을 내려고 했고, 정규 앨범을 내면 뭐 조금 더 좋겠지,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다행이네요. 앨범을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요?
저는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분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메일을 보내요. 이번 앨범 커버도 그렇게 만들었어요. 제가 평소 좋아하는 피시즈(PCS)라는 작가님에게 연락을 했죠. 이런 식으로 뭔가를 같이 해보자고 먼저 제안하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든든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작과 비교해 이번 앨범에는 어떤 변화가 느껴져요. 전환점이랄까, 그런 계기가 있었나요?
솔직히 첫 앨범 <777>, 두 번째 앨범 <Yuri>를 선보였던 시기가 인생의 암흑기라 할 수 있어요. 앨범을 어떻게 완성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앨범을 냈지만 좀 허무했고, 그 노래들을 사랑하지만 듣지 않다시피 했어요.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죠. 사실 제 자신의 우울한 면을 싫어해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Yuri>는 ‘수용’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앨범인데, 정작 제가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죠. 왜 그럴까 계속 파고들다 보니 이게 나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생각으로 변화했어요. 그래서 힘들었던 시기에 쓴 곡을 모아 정규 앨범을 냈고요. “이런 메시지를 느끼세요”가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으니 재미있게 사세요. 어떤 형태로든 살아가세요”라는 느낌에 가깝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은 저한테 각별해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보답, 자신에 대한 증명인 셈이죠.
 


지독한 성장통을 앓았군요. <나쁜 마음>의 주제는 ‘사랑’인데, 자신을 수용하는 과정 뒤에 선보인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맞아요. 수용도 하고 별걸 다 했지만 결국 원점은 사랑이었어요. 사랑으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대상에 따라 그 느낌도 다 다르고요. 제 앨범에 대해 여전히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지만 나중에 듣고선 ‘아, 그땐 저런 생각을 갖고 있었네’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사랑의 형태는 무척 다양해요. 그 대상이 연인이나 가족이 될 수 있고,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는데 이번 앨범에서 ‘논’이라는 곡이 눈에 띄었어요. 키우고 있는 첫째 고양이의 이름이 논(Non)이죠.

네, 논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는데, 정말 아끼는 곡이에요. 논이는 재작년 10월쯤 데려왔는데 저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죠. 다리 골절로 늘 집에만 있었는데 어느 날 창문 밖에 조그마한 돌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그게 움직여서 자세히 보니까 작은 고양이였어요. 온종일 추운 날씨 탓에 웅크린 채로 얼어버린 것 같았어요. 다친 다리를 끌고 고양이를 안으로 데려왔는데 금세 어디론가 숨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린 왜 이렇게 처량하지?’라며 같은 처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처로운 마음에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심했고, ‘아무것도 없다’라는 뜻의 None이라는 단어에서 이름을 따와 Non이라고 지었어요.



그래서 그 곡에 더 애틋한 감정이 들었나 봐요.

이제는 논이도 많이 튼튼해졌고, 덕분에 제 마음도 한결 건강해졌어요. 그 시기를 같이 보내서 그런지 엄청 각별한 사이가 됐죠. 반려동물을 상품화하는 것 같아 원래 논이에 대한 곡을 쓰지 않았는데 이것도 사랑이지 않나 싶기도 해서 앨범에 수록했어요.



그렇게 새로운 존재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자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죠.

동의해요. 실제로 논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몇 달 뒤 제가 속한 레이블 프로듀서인 단편선 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원래 정규 앨범을 내려는 나름의 계획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크게 일을 벌리려는 건 아니었어요. ‘혼자 하지, 뭐’ 이 정도였는데 논이 덕분에 뭔가 도전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런 점에서 논이는 저한테 특별한 친구예요.



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음식이 완성됐네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토마토 스튜입니다. 그냥 수프처럼 먹거나 파스타로도 먹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아요. 생각보다 만들기도 쉽고요. 평소 잘 안 먹는 채소들을 고기와 볶다가 물 넣고 토마토랑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끓이면 끝. 간단하죠.
  


와인과 곁들여 친구들과 먹기에도 좋을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이라면 다 먹어 봤을 거예요. 잘은 못하지만 남들에게 뭔가 해 주는 걸 좋아해요. 특히 다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요리해서 자주 만들어주곤 해요. 반응은 극과 극이더라고요.(웃음)
  


이걸 먹으면 저도 찐친이 되는 건가요? 토마토를 잘 안 먹는데, 이건 계속 손이 가요.
그런 거죠! 맛이 별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자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많이 만들어 놓고 소분하는 게 귀찮아서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게 돼요. 오늘처럼 매일 나눠 먹을 수 없으니까.
  


계속 얘기를 나누다 보니, 최근 보일 님한테 큰 변화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모습, 어떤 음악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나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수면 음악 같은 사람이었으면 해요. 수면은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거니까. 그것처럼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사람, 조금은 고요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제 음악도 편하게 들으면 좋겠고, 저도 그렇게 다가가려고요.



보일의 원 팬 토마토 스튜 쿠킹 플레이리스트
요리 순서대로, 이 음악을 곁들여 만들어 보세요.
  
[재료] 양파, 감자, 버섯, 소고기, 토마토, 브로콜리, 시판용 토마토 페이스트, 바질, 월계수 잎, 페퍼론치노, 치킨 스톡.
  
<Honey and Clover> OST - ‘Houkago no Iro’
요리 시작 시점부터 같이 재생해요. 집중해야 할 땐 보컬 대신 연주곡을 주로 듣는데, 제가 <허니와 클로버>라는 만화를 좋아하기도 하거든요.
1. 브로콜리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양파, 감자, 버섯, 소고기, 토마토는 한입 크기로 손질한다.

2. 오일을 두르고 소고기, 양파, 감자, 버섯 순으로 볶는다. 이때 바질과 후추도 함께 넣어 주면 좋다.
3. 어느 정도 익으면 물과 시판용 토마토 페이스트, 토마토 치킨 스톡을 넣고 끓이다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토마토의 껍질을 벗기고 그대로 으깨 준다.
  
Takashi Kokubo – ‘Oasis of The Wind ll – A Story of Forest and Water’
신나게 시작해도 하다 보면 살짝 지치게 되잖아요. 이 요리는 또 푹 끓여야 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이 곡을 재생해요. 자연계 음악 쪽인데 틀어 놓고 누워 있기 좋더라고요. 저는 요리를 할 때 분주한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아주 천천히 하거든요. 이런 종류의 음악을 틀어 놓고 다른 것도 했다가 누워 있다가, 다시 맛도 보고 그러는 것 같아요.
4.브로콜리, 월계수 잎과 페퍼론치노를 넣고 30분은 푹 끓여 준다.


POOM – ‘De la Vitesse à l'Ivresse’
먹을 땐 음악이 제일 중요하죠. 이건 토마토 스튜를 먹을 때 꼭 듣는 음악이에요. 주로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니까 약간 경쾌하고 말소리가 있는 곡이 좋아서 이걸 배경음악처럼 틀어요. 확실히 혼자 있을 때 듣는 음악과는 분위기가 확 달라요.
5. 향에 맞게 펜네 혹은 빵을 곁들여 먹는다.


아티스트 보일 @boil____


Editor & Videographer 우수빈

Photographer 김병준

Designer 이정하

매거진의 이전글 [Style] My Souveni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