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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at Apr 15. 2022

[Hot Stuff] 버섯과의 힐링 타임

당신의 가장 가까운 버섯 농장 ‘르타리’


누구에게나 찜해 둔 아지트 같은 곳이 있습니다. 우산을 지붕 삼아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거나 남몰래 커튼 뒤에서 초콜릿을 까먹지 않는 나이가 됐어도 여전히 나만의 안식처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럴 때면 유난히 창이 커다란 성수동의 한 카페를 찾게 되는데요. 이곳에서 멍하니 앉아 구름이 제철인 하늘을 올려보거나, 담벼락 아래에서 어떤 작당모의를 벌이는 아이들을 관찰하곤 합니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벌러덩 누워 단잠에 빠진 강아지의 숨소리에 마음이 한결 유연해지기도 해요. 여기에 직접 기른 버섯으로 만든 건강하고 단정한 음식이 더해지면 빈틈없이 행복한 시간이 완성됩니다. 입안에 맴도는 계절을 만끽하기 좋은 날, 버섯 농장 ‘르타리(LETARI)’의 박주희 책임, 이채원 대표를 만났습니다.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한 순간 느낄 법한 보드랍고 몽글몽글한 어떤 마음의 흔들림을 품고서.







한눈에 봐도 보통의 카페와는 다른데, 르타리는 어떤 곳인가요?
채원 : 입구의 문구처럼 ‘당신의 가장 가까운 버섯 농장’이라는 타이틀을 표방하는 공간입니다. 지하에서는 버섯을 키우고 이를 재료로 만든 간단한 메뉴들을 1층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도시 안에서 직접 작물을 기르고 재배해서 먹는 건강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할 수 있죠.
 


원래  분의 직업은 도시계획자라고 들었어요. 버섯 농장을 시작하게  계기는 무엇인가요?
주희 : 르타리는 ‘모노스페이스에서 만든 브랜드예요. 건물 2층에 위치한 모노스페이스는 도시 공학, 도시 사회학, 건축 등을 전공한 이들이 모여 만든 도시계획회사인데요. 어느  “계획만   아니라 직접 실행해 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동네에서 다양한 경험을   있는 공간에서 출발해 여러 아이템을 거쳐 도시 농업으로 결론 지어졌습니다. 처음부터 버섯은 아니었어요.  건물의 지하를 창고나 작업실이 아닌 뭔가 생산적인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던 차에 지하에서 버섯을 기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때 이거다 싶었어요.



애초에 버섯이 시작점이겠구나 싶었는데, 예상이 빗나갔네요.
채원 : 조선 시대에는 채소 재배지, 근현대에 이르러 제조업, 최근에는 지식 서비스 산업까지, 전통적으로 성수동은 ‘생산’이라는 정체성을 이어 왔어요. 이 생산이란 키워드를 바탕으로 삶의 기본이 되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싶었고, 여러 작물 중 가장 적합했던 버섯을 선택한 거죠. 르타리라는 이름도 함께 일했던 인턴이 ‘느타리’의 ‘느’ 대신 소리 나는 대로 ‘le’를 넣어보자고 해서 탄생했어요. 너무 직관적이지 않으면서 듣다 보면 느타리버섯이 떠오른다는 점이 좋았거든요. 때로는 우연히 결정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르타리의 시그니처 메뉴 '르타리 스프'(왼)와 건강한 한 끼 '머쉬룸 후무스 샌드위치'(오)


우연이 이끈 그 결정 덕분에 건강하고 맛있는 버섯 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됐네요. 특히 양송이 대신 느타리로 만든 스프의 향이 무척 좋아요.
채원 : 시그니처 메뉴인 ‘르타리 스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기도 해요. 흔히 버섯 스프라고 하면 경양식집에서 선보이는 크림 베이스의 양송이 스프를 떠올리곤 하는데 이 스프는 조금 달라요. 느타리버섯을 듬뿍 넣어 특유의 고소함과 식감을 경험할 수 있어요. 편하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손님들의 반응도 좋은 것 같아요.
주희 : ‘르타리 스프’는 성수동에서 서양식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쓰리캣메이커리와 함께 만든 메뉴에요. 저희가 원래 하던 일은 음식과는 거리가 있잖아요. 모든 과정을 직접 도맡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전문적으로 해오셨던 분들과 협업하는 게 오히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쓰리캣메이커리의 김고은 대표님을 만나 르타리의 취지를 전달하니 흔쾌히 도움을 주셨어요. 샌드위치는 뺑드에코의 빵을 사용하고 있으며, 커피는 로우키라는 카페에서 배웠어요. 성수동에 있는 곳들이죠. 벤치나 입간판, 비누 등도 동네 공방과 함께 제작했습니다.
 


작은 가게, 스몰 브랜드와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이 르타리만의 큰 차별점이네요.
채원 : 메뉴판에도 레시피를 제공한 가게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놨어요. 이곳에서 맛보고 좋았다면 또 그곳에 갈 수 있도록 말이죠! 요즘은 못난이 채소로 소스를 만드는 울퉁불퉁 팩토리와 신메뉴를 개발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르타리를 설명할 때 ‘동네’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죠. 성수동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지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여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주희 : 서울숲,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성수동이 꽤 활성화됐는데요. 저희 기준에서 변화의 속도가 약간 빠르게 느껴졌어요. 상대적으로 르타리가 위치한 동네는 대림창고가 막 들어섰을 당시의 성수동 분위기를 담고 있어요. 새롭거나 젊은 느낌은 덜하지만 주거 공간, 부품 가게, 전통 시장, 학교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조금은 한적한 이곳에서 우리의 속도에 맞게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임대료도 큰 이유 중 하나였어요. 또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근방에 단골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는데요. 외진 곳에 있더라도 맛있고 건강한 메뉴를 선보인다면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어요.
 


블로그에 ‘산책, 서성이기, 잠시 앉기, 인사, 모르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고 쓴 글을 봤어요. 그런 생각이 깊이 반영된 덕분일까요? 잠시 고민은 미뤄두고 멍 때리거나 평화로운 시간이 필요할 때 이곳에 들르면 좋을 것 같아요.
주희 : 정확한 건 아니지만 독일은 카페가 얼마나 있는지를 반영해 커뮤니티 지수를 측정한다고 해요. 르타리의 지향점은 말씀해주신 대로 핫한 카페 공간이 아닌 오가면서 잠시 들릴 수 있고, 혼자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에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랬죠. ‘건강한 공간과 음식을 서브하는 곳. 힐링이 필요할 때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어느 손님의 리뷰를 보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수익과 결부되어 있다 보니까 이렇게 계속 운영하는 게 옳은지도 고민이 돼요. 여전히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르타리에서 마주한 인상적인 풍경이나 찜해둔 장면도 있겠죠?
주희 : 저희 입간판에서 ‘yes kids, yes animals’라는 문구 보셨나요? 이걸 본 뒤 미소와 함께 카페에 들어오는 분들이 있어요. 성수동에는 아이와 함께 가거나 반려견과 동행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곳을 찾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한 손님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이 공간이 좋아요”라고 말해준 게 기억나요.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인데 그렇게 알아주니 내심 기쁘더라고요.
채원 : 카운터를 정리하다 고개를 들어 손님들을 바라본 적이 있어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젊은 친구들, 연세가 있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이 이 공간을 채우고 있더라고요. 즐길 거리가 워낙 다양한 성수동이다 보니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카페를 방문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복작복작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잔상처럼 남아 있어요.
 


르타리에 대한 후기에는 쇼룸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요.
주희 : 버섯이 자라는 모습을 카페에서도 보여주고 싶어서 어느 정도 자란 버섯을 지하에서 꺼내 올려 뒀는데 오픈할 시기가 되니 자연스럽게 말라 버렸어요. 오브제처럼요. 그렇게 바닥에 자갈도 깔고 조금씩 꾸미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처럼 됐습니다. 아이들과 강아지가 특히 좋아해요. 앞으로는 브랜드나 작가를 소개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에요.
 


많은 사람들에게 르타리가 어떤 장소로 기억되길 원하나요?
주희 : 도시 안에서 작물을 길러 요리해 먹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저 편한 마음으로 머무를 수 있는 동네 공간이 됐으면 해요.



주소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9가길 14 1층
가격 르타리 스프(6,000원), 머쉬룸 후무스 샌드위치(10,000원), 밀싹주스(7,000원), 버숫가루(6,000원)
문의 @letari_seongsu




Editor 노유리
Photographer 김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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