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at Apr 15. 2022

[Style] My Souvenir

영화감독 남궁선의 소뿔 뱅글


여행을 마친 후 막상 기억에 남는 건 의외의 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아무런 정보가 없던 길의 발견, 우연한 계기로 만난 사람들, 계획하지 않았던 소비처럼요. 남궁선 영화감독이 십여 년 전 방문했던 콜롬비아의 바랑키야를 떠올리며 건넨 이야기에는 수많은 우연과 필연적인 그림들로 가득합니다. 자신만의 렌즈에 피사체를 담아내는 그녀의 시선에 포착된 소뿔을 깎아 만든 작고 단단한 뱅글도 그 중 하나인데요. 인생의 변곡점은 어떠한 물건으로 인해 찾아오기도 해요. 평소 꽁꽁 닫아둔 지갑이 스르르 열렸던 그날의 노점에서와 같이 말이죠.






물건의 용도 소뿔로 만든 뱅글. 어떤 여행이었는지 2010년에 어어부 프로젝트 팀으로 백현진, 장영규 그리고 방준석과 함께 콜롬비아에 가게 됐어요 ‘Carnival de las Artes de Barranquilla 2011’이라는 예술제가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 바랑키야에서 열렸는데요. 저는 영상 기록 스태프로 동행했죠. 구입 장소와 발견 경로 일정이 없던 날에 팀과 함께 바랑키야 도시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노점에서 직접 깎은 것들이라며 장신구를 판매하고 있었어요. 참 예쁘다고 생각하고 지나치던 차, 옆에 있던 백현진 씨가 저런 건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물건이라며 반드시 사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그 얘기에 결국 넘어갔죠.(웃음) 첫인상 밝은 색의 석조 건물들을 배경으로 정말 한 뼘 만한 작은 가판대 위에 놓여 있었어요. 한 사람이 만든 것이 분명한 뱅글들 사이에서 유독 마음에 들었던 빛깔과 모양, 두께… 삼박자가 완벽했던 기억이 나요. 이 물건과 관련해 가장 애착이 가는 기억 예술제의 마지막 날이면 거리 하나를 막고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며 놀거든요. 머리 위에 얼룩말 가면을 얹고 깔깔 웃으며 꼬이는 스텝을 밟으며 걸어가던 저녁의 골목길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집 앞에 마실 나온 다섯 살 아이조차 복잡하고도 관능적인 쿰비아 스텝을 몸에 밴 듯 흥겹게 추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물건 하면 떠오르는 단어 세 개 바랑키야, 쿰비아, 살사. 그 여행지에서의 최고의 맛 콜롬비아에서 먹은 음식들 중 기억에 남는 건 의외로 평범한 것들이었어요. 호텔이나 식당에 비치된 무한 리필의 드립 커피조차 너무도 신선하고 맛있었거든요. ‘아! 산지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죠. 물건을 구매하는 기준 원래 물건을 잘 안 사는 편이었어요. 바랑키야에서 지나칠 뻔했던 이 뱅글을 구입한 경험 이후로, 여행지에서 그곳만의 재료로 만든 수제 액세서리나 장식품은 마음에 들면 구입하자는 원칙이 생겼어요. 어떤 점에서 당신의 취향과 잘 맞는지 재료의 매력에 집중하는 단순성과 화려하지 않지만 흔하지도 않은 볼드함. 현재의 위치 여름이면 종종 팔목에 끼고 다녀요. 그저 작업실 테이블 위에 올려 두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 다시 선물을 한다면 미안하지만 이걸 다른 사람에게 줄 순 없겠어요.(웃음) 아이가 자라서 엄마를 기억하는 물건이 된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볼게요. 이 물건 옆에 꼭 있으면 좋을 아이템 여름에 살랑살랑하게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같은 여행에서 샀던 부드럽고 납작한 소가죽 샌들을 짝궁으로 맞출래요. 이 물건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점. 언젠가 꼭 갖고 싶은 아이템 돌릴 필름이 없으면 크게 쓸모가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16mm 영사기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필름을 직접 통과한 빛이 스크린에 닿는 특유의 부드러움이 막연하게 그리워서인가? 그런가 봐요.


영화감독 남궁선 @namkoonsun




Editor 박지현

Photographer 김병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