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aat> 에디터들의 테이블에 빠져서는 안 될 최애템
Vintage in December
한때 빈티지 그릇을 모으는 게 취미였어요. 쉽게 찾기 어렵고 소장 가치가 있는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SNS를 종일 뒤졌죠. 이 빈티지 그릇도 그렇게 소장하게 됐고요. 그릇 저마다 플레이트 넘버가 지정되어 있는 게 좋았고, 특히나 월별로 수량을 한정해서 만들었다는 게 특별했죠. 열두 달 중 ‘December’를 사게 된 것도 의미가 있어요. 제 생일이 있기도 하고, 그 계절 특유의 분위기가 한껏 느껴져서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달이거든요. 환경을 바꿀 때마다 하나씩 사들인 식기들을 정리했는데, 유일하게 이 그릇만큼은 몇 번의 이사를 거쳐도 여전히 제 손에 있네요. 누가 봐도 생김새는 그릇이지만 음식을 올려 두는 용도로 사용하지 말고 아트 오브젝트로 두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해요. 종종 특별한 게스트가 집을 방문하면 기꺼이 내주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어디 한 곳에 두고 정성껏 아껴 소장할까 봐요.
– Editor 수빈
Smooth like butter
제게 버터라 하면 우유 회사에서 나온 네모난 버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버터가 식탁 위 풍경을 바꿨습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수제 버터 가게, ‘버터 팬트리’의 피니싱 버터(Finishing Butter)가 그 주인공입니다. 조림 간장이 들어간 해초 버터, 마른 고추가 들어간 올리브 & 안초비 버터라니! 피니싱 버터는 재료의 풍미를 극대화해 음식의 풍미를 돋운다고 해요. 버터에 토핑이 들어가는 게 생경했지만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버터만 있다면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오래 찾아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더라도 있어 보이게 차려 먹을 수도 있지요. 구운 빵에 버터를 발라 베어 무는 즉시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감칠맛이란! 갓 지은 밥에 버터 한 조각과 달걀프라이를 얹어 비벼 먹으면 또 다른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구운 고기에 올려 먹어도 별미고요. 덕분에 챙겨 먹는 일이 귀찮기보다 즐겁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음식에 버터를 넣다 보니 DNA에 Butter가 흐르지 않을까 의심스럽지만, 곰손 같은 제 요리 실력을 구제해줘서 고마울 따름이에요.
– Editor 명온
점심시간에 읽는 시집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따로 먹을게요. 맛점!” 낮 12시 30분 땡, 오매불망 기다렸던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어요. 요즘 화제인 드라마는 무엇이고 남녀 주인공이 어떤 이별을 맞이했는지 얘기하며 보내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날씨가 화창했거든요. 회사에서 약간 떨어진 카페에 도착해 커피 한 잔과 레몬 스콘을 주문하고 챙겨온 시집을 꺼내 읽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언제든 멈춰도 괜찮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부담없이 음미할 수 있는 시집이 어울리니까요.
“오늘 참 쾌청하지요 / 공연히 날씨 이야기만 하게 되어도 / 저절로 믿어지는 사랑이 있다,"(강혜빈의 시 ‘익선동’ 중에서)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은 강혜빈, 김승일, 김현, 백은선, 성다영, 안미옥, 오은, 주민현, 황인찬 9명의 시인이 점심시간에 써내려간 시집이에요. 점심 풍경을 이루는 사람과 사물, 이 시간에 만난 사람과의 일화, 정오에서 다른 정오로의 이동으로 감각하는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없던 약속까지 만들어내며 꿋꿋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자의 조용한 기쁨을 누리기 딱이죠.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만나지 않았지만 시인의 언어로 펼쳐지는 장면들 덕분에 뭉게뭉게 기분이 좋아져요. 누군가 카페 문을 열 때마다 짤랑이는 종소리마저 특별한 한낮의 시간.
– Editor 유리
테이블의 단짝 체어
한자리에 이렇게 오래 눌러 앉아있던 적도 없었을 겁니다. 집중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저에겐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걸 짚고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해요. 지난 한 달간 사진 속 선녹색 체어에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할당했습니다. 아마도 엉덩이가 닿는 쿠션이 그전에 비해 조금은 꺼져 있지 않을까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집콕’ 라이프가 전개됐고 그로 인해 집에 놓인 유일한 테이블이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했습니다. 식사를 위한 식탁은 물론이거니와 반나절 이상 일을 해치우는 업무용 책상, 잠깐 턱 괴고 유튜브 영상이나 스낵 컬처를 때우는 간이 테이블 등으로요. 위시 리스트에 올려 두고 눈독만 들인 1970년도에 생산된 매그너스 올센의 빈티지 체어를 결국 구매하고 말았습니다. 결론적으론 매우 잘한 선택이었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즐거움일랑 하나 없이 이 시기를 암울하게 보냈을 거예요. 예로부터 제 어머니는 가구와 그릇은 짝으로 구매하라고 이르셨어요. 새로 들인 두 번째 체어는 그렇게 이 집으로 오게 되었죠. 역시 바라만 봐도 기분 좋아지고 주섬주섬 시선과 손길이 가닿지만 새로운 계절엔 조금 덜 앉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느덧 봄이니까요.
- Editor 지현
Designer 이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