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 좋았다
처음부터 책이 좋았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면 친구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외딴섬 같은 농촌에 살았다. 무료한 하루들 속에 책은, 마음 잘 맞는 단짝 친구 같기도 하고 재미있고 멋진 영화 같았다. 언제든 펼치면 재치 있고 감동적인 내용들이 나를 웃기기도 울리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문학적 감성도 함께 자라 갔다.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하고 다니던 시절 국어와 문학이 좋아졌다. 교과서라고 차별대우하기는커녕, 쉬는 시간에도 발췌된 작품들의 감동을 이어가기에 바빴다. 그렇게
유난한 책사랑에 빠져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문학소녀'라는 마음에 드는 별명도 선물 받았다.
특히 시를 읽고 배우는 시간은 두근거리고 설레었었다.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을 함축시키고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쓰인 시라는 장르는, 드라마 속 잘생긴 남자 배우보다 더 두근거리는 쉬지 않는 반짝임이었다.
어느덧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시수업을 듣고 있다. 일기장에만 글을 써서 매해 1인 작가, 1인 독자를 위한 시스템을 유지하던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다가온 것이다.
코로나 시국은 집에서도 원하는 분야를 원격으로 배울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을 개발해 냈다. 얼리어답터는 아니지만, 결혼생활하면서 더 소심해진 성격 덕분에 자체적 사회적 거리 두기를 앞서 실천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 나에게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쉽게 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제안해 주었다.
‘하고 싶다’에서 ‘하다'라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하고 싶다는 말은 사람이나 동물, 물체가 행동이나 작용을 이루다라는 뜻의 ‘하다’라는 동사와,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싶다’라는 보조 형용사가 결합된 말이다.
행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테두리에 멈춰 서서 머뭇거리고만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맴돌기만 했던 마음이동사형이 되어 글을 쓰게 한 것이다.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은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린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었다. 하지만 글에 대한 열정만은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분들이셨다. 수업을 듣고 각자의 쓴 작품을 보며 동등하게 감상하고 의견과 칭찬을 얘기해 주셨다. 함께 글을 쓰면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많은 나이란 장애물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노련한 달리기 선수처럼 느껴졌다. 그 열정에 힘입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물들게 되었다.
100년 정도 오래 숙성된 간장을 TV에서 본 적 있다. 묵혀질수록 특별해지고 맛있어진 간장처럼, 지나온 시간은 오히려 더 성숙한 글을 쓸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한 개씩 꺼내어, 정성스럽고 맛깔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고 용기를 더해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