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일상
집 근처 양대창 집이 10주년이 되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상가건물 1층의 양대창 집은 지나가다 먼발치에서 봤을 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가게였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는데도 곱창과 게장을 맛보는데도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기에, 양대창은 아직도 어려운 음식이었다.
오늘따라 10주년이라는 단어에 이끌리어, 양대창 집에 없었던 관심이 생겼다. 코로나 이후 유치가 빠진 듯 군데군데 비어져 가는 가게들 가운데 휩쓸리지 않았었나 보다. 평소보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니, 많아야 열댓 명 앉을 수 있을 것 있는 평수에 우드톤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는 정도였다. SNS에 사진을 올리면 대단한 관심을 받을 정도의 인테리어는 아니어서, 실망하며 돌아서는데 외부 유리창에 붙어있는 시트지의 조그마한 글들이 눈길을 끌었다. 양대창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후기들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친절하다 등의 깨알 같은 글들이 인쇄된 시트지가 가게 외벽을 감싸 안고 있었다. 하나씩 읽어보니 양대창이란 낯설음으로 거부했던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도 비슷한 마음이 있었다. 심리학에서 초두 효과라는 말이 있다. 첫 만남에서 느낀 인상, 외모, 분위기 등이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여 대인관계에서 작용하는 효과를 일컫는다. 학창 시절 친구를 사귈 때도, 직장 동료를 만날 때도, 배우자를 선택했을 때마저도 나는 초두 효과가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느낌처럼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대와 달라서 낭패를 본 적도 있었다. 공감대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나중에 보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사람임을 알게 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두 효과에 의존해서 인생 친구가 될 뻔했던 사람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놓쳤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지금 생각해도 아깝다.
초두 효과가 준 확신은 이제 보면 못 미더운 확신이었다. 외모가 주는 호감은 누구라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지 못했던 장점들을 알아가는 여유 또한 미리 장착했어야 했다. 빛나던 장점들도 때에 따라서는 빛바랜 모습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 주는 배려까지도.
하나의 가게가 진정한 맛집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주인장의 손맛으로만 결정되기는 어렵다. 양대창 집 사장님도 엄청난 맛의 고수였다고 해도 손님들과 끈끈한 소통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손님들의 칭찬과 응원의 댓글이 코로나처럼 어려운 시기를 거뜬히 넘어서게 도와줬을 테니까. 이제야 소통의 소중함이 크게 다가온다.
10년 동안 한 번이라도 양대창 집에 가봤으면 어땠을까? 예상과 달리 착 달라붙는 맛에 반해 단골 고객 중에 한 사람이 되어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초두 효과란 크림이 얹어진 커피가 있다면 크림 밑에는 알지 못했던 달달하고 진한 커피만의 매력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한 번씩은 휘휘 저어 맛을 본다면 진정한 커피 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의 매력을 알고 싶고 그런 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고 싶다. 양대창 집의 단골손님들처럼 따수운 친구가 많은 사람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편견보다 매력을 더 자주 알아보는 내가 된다면, 알지 못했던 세상을 함께 배우고 넓혀갈 인생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올해는 양대창 집에 가봐야겠다.
사진: silviarita.pixabay